그림자 / 노혜숙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거실 벽에 그림자를 만들고 지나간다. 길가의 벚나무가 베란다 유리창을 뚫고 벽에 부딪치면서 허리가 꺽인다. 잔가지들이 태풍에 휩쓸리듯 한쪽으로 누웠다가 서서히 일어난다. 밤의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사물들이 동시에 일어나 춤을 추듯 흔들리다 스러진다.

햇볕 좋은 낮엔 거실 바닥에 그림자 벽화가 펼쳐진다. 사물들이 빛의 이동에 따라 제 그림자를 바꿔 가는 모습은 흥미롭다. 대체로 그것들은 실물과 닮아 있게 마련이지만 때론 실물보다 더 예술적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그림자에 저마다 이름을 붙여준다. 사물에 한정된 이름의 의미망을 벗어버리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흥미진진한 상상의 세계를 즐길 수 있다.

그림자 하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기억 속의 삽화가 있다. 들길 한가운데 서 있던 가로등의 그림자다. 석포리로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다. 인가도 몇 안 되는 데다 해 질 무렵이면 발길이 뚝 끊긴다. 국도에서 석포리로 연결된 농로를 오십 미터 쯤 걸어가면 길이 급하게 왼쪽으로 꺽인다. 가로등은 바로 길이 꺽이는 그 지점에 있다.

나는 도시로 이사 오기 전 가로등이 대각선으로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 살았다. 가로등은 밤낮으로 고개를 꺽은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꺽인 그림자 위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예닐곱 번 쯤 지나갔다. 어느 날로부터인가 습관처럼 가로등의 안부를 확인했다. 그림자는 쓸쓸했으나 불빛은 따스했다. 외진 길목을 지키며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낡아가는 가로등의 존재는 더 이상 사물이 아니었다.

가로등 근처에는 팔순의 할머니가 살았다. 허리가 기역자로 굽어 있었다. 가파르게 꺽인 생의 주름이 그러할까. 할머니는 가로등 그림자를 밟으며 달팽이처럼 느리게 걸었다. 작은 밀파와 도구는 누가 누구를 밀고 가는지 알 수 없게 한 몸으로 밀착되어 있었다. 엉덩이는 닳아서 움푹 패고 반질반질해진 스티로품 방석이 달려 있었다. 분신처럼 앞뒤로 둘을 거느린 할머니는 이따금 가로등 아래서 허리를 펴고 숨을 가다듬었다.

가끔 가로등이 있는 그 길로 산책을 나갔다. 폭설로 논밭의 경계가 지워진 풍경 속에서 살아있는 것들의 기적을 만나는 일은 안쓰러웠다. 가로등에 기대어 가녀린 줄기를 뒤채는 강아지풀의 그림자는 어슴푸레했다. 지녔던 색을 모두 지우고 희부옇게 바래 있었다. 미처 꽃밥을 털어내지 못한 채 꺽여 있었다. 나는 바람의 흔적처럼 나붓대는 그의 자취를 겨우 카메라에 담았다. 석포리의 기억 속에는 기역자로 꺽인 할머니와 가로등, 강아지들의 영상이 아릿하게 남아 있다. 그림자에 마음을 주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보이는 그림자의 낭만적인 이미지에 비하면 보이지 않는 그림자의 은유는 은밀하고 위험하다.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는 본질과 그림자 사이에서 그림자가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시사하고 있다. 실체와 그림자를 구분하지 못 할 때 환영에 갇힌 노예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우화의 메시지는 여전히 경고로 삼을 만하다.

자본과 권력과 욕망이 결탁하여 만들어내는 형형색색의 눈부신 그림자를 보라. 그 그림자에는 치명적인 중독성이 있다. 한 번 맛을 보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게다가 신처럼 전적인 헌신을 요구한다. 무저갱 같은 식욕으로 그가 거꾸러질 때까지 탐식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거기 빠져 죽을지언정 그림자의 환영에서 벗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그 욕망의 틈새를 파고드는 맘몬신의 공격은 집요하다. 우리는 날마다 그것들의 환상적 그림자에 속아 울고 웃는다. 세상은 지금 그 욕망의 그림자로 어두컴컴하다. 문제는 돈과 권력 자체가 아니다. 그것들이 약속하는 신기루에 눈먼, 우리들의 맹목적 질주다.

나 역시 바깥 그림자에 정신이 팔려 자기 안의 그림자를 살피지 못했다. 그림자는 때로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수위를 알려주는 조짐일 수 있다. 나는 가끔 꿈속에서 억압된 아니무스적 인물로 등장한다. 그를 통해 무의식에 드리워진 내 그림자의 무게를 헤아린다. 온갖 그림자에 치여 왜곡된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는 일은 불편하다. 자칫 그림자만 쫓다 진짜 내 인생은 살아보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겠다 싶다.

검은 그림자의 위력이 난무하는 어지러운 세상, 환영 너머의 엄혹한 실체를 직시하고 균형을 잡는 일은 만만치 않은 숙제다. 보듬고 가야 할 생의 따뜻한 그림자를 가려내는 일 역시 미루어선 안 되는 과제다. 외면할 수는 있어도 피할 수는 없는 게 자신의 그림자 아닌가.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결국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요, 목숨 거두는 따순 빛이 저 바깥에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리라.

그래, “침묵이 말의 뼈”를 이루듯 그림자는 생생한 존재의 기척이다. 현란한 그림자 군무 속에 저문 밤, 거실에 벽화를 그리고 사라져가는 저 바깥의 불빛은 누구의 기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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