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現場 / 맹난자 

퇴근 후 무거운 걸음으로 아파트 마당에 들어섰다. 비온 뒤라서인지 화단의 나무 냄새도 좋고 나무 잎들은 한결 푸르다.

꽃 진 라일락나무의 잎 새도 전보다 넓어졌고, 어느새 화무십일홍이 된 작약은 제 몸에 씨방을 한껏 부풀려 임산부 같은 배를 하고 있었다.

생명을 잇기 위해 저들은 숭고한 임무를 완수하고 있는데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니, 이 여름에? 그런 자괴감이 안에서 피어올랐다.

봉숭아의 통통한 씨방을 보면 터지기도 전에 손을 대고 싶어진다. 젓가락으로 통통한 배를 건드려 꺼내 먹던 은어나 명태의 알을 씹던 때도 감촉도 되살아난다.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쾌감을 즐기다가 흠칫 움츠러들도록 만 것은 한 생명체로서 부화되지 못하고 죽은 물고기를 씹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생명, 그것을 생각하면 잘못이 많은 사람처럼 나는 언제나 죄송한 마음이 되곤 했다. 보도블록 사이를 비집고 올라와 자잘한 꽃을 피운 여린 목덜미를 볼 때도 같은 심정이었다. 빈 땅이면 어디고 생명을 내린 그들에게 나는 경이의 박수를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날도 버릇처럼 땅바닥에 시선을 둔 채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지렁이 한 마리가 눈앞에 들어왔다. 낯설도록 그놈과의 해후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세상이 귀찮은 듯 놈은 보도블록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줄무늬의 투명한 실핏줄은 지나가는 광선에 아른아른했다. 땅속에나 있을 일이지​…. 외계에 잘못 나온 이방인 같았다.

토룡土龍이라 대접받던 위상은 간데없고, 부상 입은 전병처럼 간헐적으로 몸을 뒤챈다. 걸음을 멈추고 나는 잠시 그놈 앞에 서 있었다. 철없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비온 뒤에 지렁이들은 등굣길을 방해하곤 했다. 토양이 좋아서인지 그때는 지렁이가 많았다. 그걸 밟지 않으려면 발밑을 잘 살펴야 했고 또 조심해서 걸어야 했다. 짓궂은 아이들은 언제 준비해 왔는지 주머니에서 소금을 꺼내 검붉은 몸체 위에 그것을 뿌려댔다. 화덕 위에 꼼장어처럼 그놈들은 몹시 요동쳤다. ​둘러 선 아이들은 낄낄대면서 신나 했다. 간단없는 그 몸부림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동작이 멎기를 기다렸다. 꼴깍 숨 한번을 참는 사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한쪽 옆에 서서 경이롭게 바라보던 때의 충격과 박명성朴明星시인의 <지렁이>라는 시구는 터진 살갗에 소금기로 닿듯 쓰리게 전해져 왔다. 

10센티도 채 안 되는
한 오라기 실 같은
생노병사生老病死
 

지금 저 지렁이의 몸에서도 생노병사가 지나가고 있다. '10센티도 채 안 되는 한 오라기의 실 같은' 지렁이의 몸체에서도 그것은 분명 예외가 아니었다.

순간 실존에 대한 뼈아픈 자성自省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나는 어금니에 힘을 주었다. 현장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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