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줍다 / 박양근

 

내 서재에 서서 그림 한 점을 바라본다. 5호 크기의 사각형 액자 안에 온통 녹색의 풍경이 넘친다. 짙푸른 수림 사이로 뻗어 있는 길은 연둣빛이다. 길의 끝 즈음에 녹색 산등성이가 보이는데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한 점 엽록소가 되어 그림 속으로 흡수되는 착각을 일으킨다.

이 그림은 수년 전에 어느 문인이 선물로 준 것이다.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연둣빛과 짙은 초록을 넘나드는 성하의 숲에 녹색으로 물든 좁은 길이 굽어진 그림이었다. 원화原畵의 가운데를 잘라낸 조각 그림처럼 시종始終이 없었다. 그림은 마치 "어디쯤 와 있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화가의 질문인지, 숲이 묻는 목소리인지, 아니면 자문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숲길은 내게 들어오라는 조용한 눈길을 주고 있었다.

어느 여름이었다. 몇몇 문인들과 산사로 갈 기회가 생겼다. 때마침 연꽃 철이어서 백련으로 알려진 청운사에 숙소를 잡았다. 청운사는 김제평야 야산에 자리한 조그만 사찰로서 다랑논 연 밭에 백련 송이가 등불처럼 돋아 진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저녁 예불을 마치고 연지蓮池 곁 원두막으로 옮겨 백련 향을 즐겼다. 사위가 어두워지면서 길에 쏟아지는 달빛은 더없이 희어갔다.

야산으로 에워진 밤이 깊다. 멀리 떨어진 연잎부터 어둠에 묻히며 작은 숲이 길을 따라 생겨나기 시작했다. 산사는 세상 속의 섬이 되었다. 암자로 들어오는 길이 어둠으로 막히면서 연밭 고랑마다 새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가을 벌레들이 조곤대고 수런대고 마침내 목성을 높여갔다. 거구의 짐승들이 잠들기 위해 몸을 웅크릴 때 그들은 밤을 찬양하는 것이다.

어둠이 눈에 들어온다는 말이 있다. 눈조리개가 확대되는 변화를 말한다. 하지만 청운사에 머문 그날의 어둠은 귀청을 타고 잦아들었다. 숲의 합창대 앞에 홀로 선 청중이 된 기분이었다. 연밭을 지키는 황소개구리가 울고 수년 전부터 여름이면 연밭 숲에 몸을 숨긴다는 오리가 물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도 풀벌레 소리에 심란하여 몸을 뒤척이는 게다. 울대를 돋운 귀뚜라미들이 소리의 향연에 동참하면서 암자 주변은 이내 공연장이 되었다. 객만 깨어있다는 어느 구절처럼 요사채의 불빛도 오래전에 꺼졌다.

무혈혁명이다.

빛의 세계가 멸하고 소리의 제국이 세워진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승자도 패자도 없이 지배자가 바뀐다. 나는 이곳에 오기까지 밤낮을 대립의 시간으로 보았다. 낮의 길이 빛으로 눈뜨고, 밤의 길이 소리로 일어선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시간이 조용히 교체되므로 자연의 시민들은 순종하는 것이다. 이제 백련은 청향淸香으로, 풀벌레는 청음淸音으로 밤길을 채운다. 산사에서는 빛을 듣고 소리를 보는 마음으로 머물러야 하는가.

다음날 아침 공양을 마치고 주지스님께서 차 대접을 해주셨다. 무더위가 제법 기운 이른 시간이었지만 청운사 입구가 환하게 보이도록 스님은 방문을 활짝 열었다. 그 길이 보이도록 방석을 내어 주었다.

녹야綠野를 지나 암자로 들어오는 길은 어젯밤보다 더 하얬다. 이슬을 머금은 백련지에서 돋은 뽀얀 안개가 소리 없이 산사로 흘러들고 있었다. 한쪽 산자락에서는 진초록 새소리가 그치지 않고 다른 쪽에는 익어가는 벼가 아침바람에 살랑거렸다. 하룻밤 유숙이 아쉬워 그날 지켜보는 길은 절 밖으로 나간다. 나의 방향에 따라 길의 방향성도 달라진다. 그날은 차향을 음미하느라 미처 몰랐지만 수년이 지난 요즘에도 간간이 궁금해지는 것은, 스님이 왜 길이 보이는 문 앞을 굳이 내게 권하였을까 하는 의문이다.

찻잔에 떨어지는 차 소리만 연이어 굴렀다. 이른 햇살이 찻물이라는 프리즘을 거치면서 무수한 언어로 깨어지고 있었다. 숲에서 울려오는 까투리와 장끼 소리가 방 안에서 들리는 찻물 소리를 누르곤 하지만 녹색으로 흐르는 길은 변함없이 이어진다. 방 밖에는 연蓮의 길이 이어지고 방안에서는 찻물이 떨어지며 연緣의 길을 만들고 있다. 차를 마시는 일행도 마음에 길 하나를 닦고 있는지 묵언의 자세다. 지금 생각하니 스님은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길을 따르는 이치를 일러주시고 계셨던 셈이다. 길을 다니면서도 길을 줍지 못한 지난 시간이 그냥 안타까울 뿐이다.

스님의 배웅을 받으며 절을 나선다. 백련향이 온몸을 에워싼다. 보이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것 중의 하나. 그것은 향기다. 그 무형의 존재를 맞이할 요량으로 차창을 활짝 열고 들숨을 마신다. 산자락의 녹음에 눈을 뜨면서 조금 전에 마신 백련차를 조용히 되살려본다. 찻잔에 떨어지던 소리가 귓바퀴 속에서 다시 울려 퍼진다. 입안에 고이는 침을 소리 죽여 내리면서 오르내리는 길을 생각해 본다.

그때 건네받은 푸른 그림을 다시 바라본다. 그 여름의 청운사 하루처럼 유화 속의 길도 연둣빛으로 굽어 있다. 저 길을 따라가면 어디에 다다를까. 마을이 있을까, 아니면 오랜 산사가 나타날까. 아니, 저 길은 내가 그날 산사에서 내려다본 길일 수도, 산사로 찾아들던 길일 수도 있다.

4월 보름이 지나면 스님들이 하안거에 들어가신다. 한 해 동안 걸어야 할 마음의 길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아침마다 한 번쯤 저 길을 바라보며 주안거周安居의 흉내는 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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