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의 가치 / 김재희

 

 

 

산을 오르다 보면 듣기 좋은 소리가 있다. 살랑대는 바람 따라 나뭇잎이 사사삭 거리는 속에서 뭔가가 툭! 떨어지는 소리다. 오붓한 흙길을 걷고 있을 때 내 발 앞으로 떼구루루 굴러오는 도토리. 금방 떨어진 도토리는 윤기가 자르르하다. 그런 도토리를 볼 때마다 인연이라는 단어가 연상됐다. 수많은 사람 중 내 앞에 떨어진다는 것은 나와의 인연이 있다는 것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대하다 보니 무슨 귀중한 것인 양 주워오게 된다. 산속의 짐승들 밥이니 줍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또 주워보았자 양이 많지 않으면 어디에 쓸데가 없지만 그래도 산에 갈 때마다 몇 개씩 들고 와서 접시에 담아 놓는다. 요즘엔 도토리를 먹고 산다는 다람쥐를 볼 수가 없다. 다람쥐를 본 적이 언제였던가 싶다. 몸통에 그려진 줄이며 깜찍하게 쳐든 꼬리, 볼에 먹이를 잔뜩 물고 있는 모습이 새삼 보고 싶다. 사람을 그리 두려워하지도 않아서 근거리가 아니면 별로 경계심이 없다. 이렇게 도토리가 우수수 떨어지는 때는 그들이 먹이 먹는 모습을 수시로 볼 수 있었다. 그걸 보는 우리네 눈도 함께 풍만한 계절을 즐기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깊은 산속에서도 볼 수가 없으니 웬일일까 싶어진다. 언젠가 산길을 10시간 이상 걸었다. 사람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야산이 아니라 온종일 우리 외엔 다른 사람을 만나보지 못한 깊은 산중에서도 다람쥐는커녕 청설모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 발길이 닿는 등산로까지 도토리가 지천이다. 그러나 왠지 그리 풍성한 가을 산 같지 않고 좀 퍼석해 보였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거의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먹이를 쟁취하기 위해 서로 싸우고 해치는 모습일망정 생동감이 있는 정경을 보았으면 좋겠다.

갈수록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숲속뿐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마찬가지다. 들녘에 메뚜기가 있었던가, 참깨밭에 깨벌레가 있었던가, 복숭아밭에 풍뎅이가 있었던가. 어릴 적 놀잇감으로 생각하고 살았던 곤충들이 거의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으니 추억마저도 사라지면서 정서가 메말라 가고 있다. 생물들과 교감할 수 있었던 맑고 촉촉한 감정 대신 광물질들의 검붉은 녹물이 배어든 감각으로만 사는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도토리가 있는 접시를 바라보다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뭔가 작은 물체가 꿈틀거린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무슨 애벌레들이다. 순간 도토리거위벌레라는 걸 직감했다. 이 벌레는 도토리가 다 여물기 전에 산란관을 통해 안에 알을 낳는다. 그 알은 도토리를 먹으며 자라다가 도토리가 땅에 떨어졌을 때 애벌레가 되어 빠져나와 흙으로 들어가서 동면을 한 후 이듬해에 땅 위로 올라와 번데기로 변한 다음 성충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종족보존을 위해 똑같은 방법으로 살아간다. 징그럽기도 하고 그냥 놔두기 뭐해서 휴지로 싸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런데 그 애벌레가 있었던 접시에 하얀 자국이 나 있다. 아마도 땅인 줄 알고 파고 들어가려고 무던히도 몸부림을 치면서 돌파구를 뚫기 위해 품어낸 액체 같았다. 그렇게 살고자 몸부림치는 생명을 아무 가책도 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 해충이어서 없애는 것도 아니고 필요해서 이용하는 것도 아닌, 그저 잠시 눈요기하자고 가져와서 아무런 이유 없이 생명들을 무자비하게 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곤충 운운하는 나 자신의 의식이 모순처럼 느껴졌다. 나머지 도토리 속에서는 또 다른 생명이 꿈틀대고 있을 것 같아 싸 들고 산으로 향했다. 내겐 별 필요 없는 것이니 산 짐승의 밥이 되든지 도토리거위벌레의 생명을 키우든지 제 몫을 하라고 다시 산속으로 돌려놓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각자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 듯싶다. 새삼 내 자리에 대한 가치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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