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널며 / 왕린

 

 

길을 가다가도 빨래가 널린 것을 보면 공연히 기분이 좋다. 빨랫줄에 하얀 와이셔츠가 걸려 있으면 더욱 그렇다.

결혼하고 아기를 기다리던 때, 우리는 이층집 바깥 베란다가 유난히 넓은 집에 세 들어 살았다. 아래층에는 부모를 모시고 여섯 살 된 ‘현이’라는 여자아이를 키우는 주인 부부가 살았는데, 그들은 볕 잘 드는 2층에 올라와 빨래를 널어놓고 가곤 했다. 색색의 옷이 널리면 화분 몇 개가 놓였을 뿐인 그곳 풍경이 달라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들이 넣어놓은 빨래를 보면 성이 차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엄마표 빨랫줄에 길든 내 눈에 대충 걸쳐 놓은 모양새가 마음에 걸렸다. 남의 옷에 손을 대는 것이 찜찜했지만, 탈탈 털어 주름을 펴고 중심을 맞춰서 다시 널었다. 양말들도 나란히 짝을 찾아 주었다. 부서지는 햇살, 살랑대는 바람 속에서 보송보송 말라가는 빨래를 보고 있으면 무료하던 나의 생활에 생기가 돌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두워져도 아래층에서 빨래를 걷지 않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불이 켜지지 않는 날도 생겼다. 일하는 남자, 건강한 남자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현이 아버지의 하연 와이셔츠가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의아스러웠다. 빨래뿐만이 아니었다. 현이네 식구들의 얼굴에도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이 하늘이 내려앉아 있던 어느 날, 아래층은 조용한데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자동 버튼에 눌린 로봇처럼 튀어나가 아랫집 옷을 걷어 들였다. 개켜서 밀어 놓은 옷은 남의 집에 하룻밤 신세 지러 온 사람처럼 옹색하고 불안해 보였다.

저녁 늦게 현이 엄마가 올라왔다. 그녀는 무척 초췌한 얼굴로 번번이 폐를 끼친다며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남편이 수술하고 입원해 있어서 정신이 없다고도 했다. 옷을 안고 계단을 내려가는 그녀의 어깨가 한없이 처져 있었다.

퇴원한 현이 아버지가 기운을 차렸다. 현이의 조잘대는 소리가 새소리처럼 들렸다. 빨랫줄에도 와이셔츠가 다시 걸렸다. 내가 빨래를 다시 손봐 넌다는 것을 알 텐데 그들은 여전히 예전처럼 널었다. 나도 놀이 삼아 작품을 만들어 놓곤 했다. 할아버지 품 넓은 옷과 할머니 주름치마 사이에 꼬맹이의 노란 원피스를 걸어 놓으면, 손녀 손을 잡고 산책하러 나가는 행복한 노부부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현이 아버지의 셔츠와 표정이 밝아진 현이 엄마의 흰 별꽃 무늬 플레어스커트를 나란히 널면서 혼자 웃기도 했다. 내 집 빨랫줄에 황금빛 햇살 같은 평화가 찾아왔다.

우리에게도 기다리던 아기 소식이 왔다. 딸아이가 태어나자 베란다 표정도 바뀌었다. 세대를 어우르는 띠가 만들어졌다. 하얀 기저귀가 걸린 빨랫줄은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오는 배가 잔잔한 물결 속에서 출렁이는 듯했다.

세탁기가 흔하지 않던 때, 엄마는 마당 한편 수돗가에서 빨간 고무 통에 물을 받아 빨래하셨다. 수돗물 떨어지는 소리와 치대고 비비고 헹구는 소리, 일에 추임새를 넣듯 엄마 입에서 나오는 소리까지 리듬을 타고 어우리지곤 했다. 내 마음속 때까지 그대로 헹궈지는 느낌에서였을까, 땟물이 비누 거품에 쓸려 내려가는 소용돌이 속에 엄마의 주문 같은 쉬쉬 소리가 섞이던 광경은 그 자체로 멋진 퍼포먼스였다.

집에 있는 날 빨래를 너는 것은 내 몫이었다. 엄마가 남자의 자존심인 하얀 와이셔츠를 제일 먼저 헹구듯이 나도 중심점을 찍듯이 빨랫줄 중앙에 아버지의 와이셔츠를 널곤 했다. 엄마는 빨래를 깨끗이 빠는 것만큼 말리는 일에도 신경을 쓰셨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반듯하게 너는 일이 힘에 부쳤지만, 요령이 생기니 재미도 있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매어 놓은 빨랫줄에 무게가 실리면 바람 따라 나대던 줄도 묵직하게 흔들렸다. 높이높이 바지랑대를 밀어 올리면 줄다리기할 때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려진 그들도 제풀에 신이 나서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나풀거렸다.

나는 지금도 세탁물에 신경을 쓴다. 세탁기에서 돌돌 뭉친 것을 꺼내 모양새를 잡아 자근자근 밟아주고, 꼬깃꼬깃한 것은 애벌 손다리미로 갈무리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삶에 지친 남편에게 기를 불어넣듯 셔츠의 깃을 세워주고, 딸아이가 늘 웃고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옷 주름을 펴는 데 공을 들인다.

풋풋하던 시절에는 젊다는 것만으로도 풀기 빳빳이 세우며 살았다. 알 수 없는 상실감으로 처지고 후줄근해진 요즘, 빨래를 널고 나면 유독 내 티셔츠가 낡아 보이고 왠지 한쪽으로 기운 느낌이다. 비뚜름히 걸린 모양새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일. 한쪽으로 틀어진 마음 꼭지를 바로잡을 일이다.

베란다 가득 빨래를 널어놓고 차 한 잔을 만들어 햇살 앞에 앉는다. 빨래를 넣어 말리듯 내 마음도 탁탁 털어 햇빛 속에 내건다. 맺힌 응어리 풀어지고 뭔지 모를 헛헛함도 날아가라 기지개를 켠다. 갓마른 새물내로 내 마음 가슬가슬해질 걸 생각하니 한결 가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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