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마을에 가다 / 이정호

 

  루브르 박물관은 오래 전에 가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오르세 미술관을 가보기로 했다.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을 개조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동생에게서 카톡이 왔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 성당을 보냈다. 그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성당이었다. “오빠, 오르세 미술관에 가면 보내준 성당 그림 보고와. 내일 성당이 있는 마을에 갈꺼야.”

 

  오르세 미술관을 들어가서 바로 1 왼쪽에 알고 있는 밀레의 만종, 이삭 줍는 여인이 전시되어 있었다. 위층에 올라가서 인상파인 모네, 마넷과  후기 인상파인 고흐, 고갱등의 작품을 보았는데 고흐의 작품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다. 그런데 고흐의 작품에서는 다른 작품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생명력을 느꼈다.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생동감이 있었다. 보통 전시관에 가면 그냥 지나치면서 보는데 이번에는 고흐의 작품에서 활력을 느낄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린 오베르 쉬르 우아즈 성당을 관심있게 보았다.

 

  아침에 호텔로 우리를 데리러 왔다. 고흐 마을 까지는 45 정도를 가는 거리라고 한다. 기차를 타고 수도 있다.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는 차는 막히지 않았다. 차에서 동생이 말했다. “오빠, 고흐가 자살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 말도 있어. 불량 총을 갖고 놀던 2명의 소년들이 우발적으로 총에 맞아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데. 만일 고흐가 자살을 것이라면, 총알의 각도가 비스듬하지 않고 직선으로 나타났어야 했다고 .”  “ , 그러니? 그런 말도 있구나.”

 

  고흐 마을에 도착했다. 동생은 우리를 먼저 고흐의 무덤이 있는 공동묘지로 데리고 갔다.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쪽에 초라하게 보이는 고흐의 무덤이 있었다. 옆에는 동생 테오의 무덤도 같이 있었다. 미술사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훌륭한 작품들을 남긴 그였다. 살아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힘든 삶을 살은 그가 여기에 잠들어 있다.

 

  무덤에서 나왔다. 밀밭이 펼쳐졌다. 그곳을 걸었다조금 걸어가니 고흐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까마귀 나는 밀밭  안내판에 있었다. 이곳에서 고흐는 권총으로 자살하였다. 밀밭을 따라 동네 아래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성당이 보였다. 동생이 말했다. “오빠, 성당이 바로 그림에서 나오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 성당이야”  그냥 평범하게 보이는 성당이었다. 그런 성당을 고흐는 강렬하고 살아 움직이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다시 아래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고흐가 머물렀던 라부 여인숙이 나타났다. 이곳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했다. 1 층은 식당으로 개조했다. 3층으로 올라가니 초라한 조그마한 방이 나타났다. 고흐가 돈이 없어서 방을 얻어서 이곳에서 기거했고 여기서 동생 테오가 보는 앞에서 마지막 생을 마감했다.

 

  고흐는 여인숙 주인 아델린 라부의 초상화를 그렸다. 거리 쪽으로 돌아 나오니 당시의 여인숙 풍경 사진이 있었다. 사진속의 사람들은 여인숙 주인의 가족들이 아닐까 상상해 보았다. 여인숙 건너에는 오베르 쉬르 루아즈 시청이 있었다. 고흐는 이것도 오베르의 시청이라는 그림으로 남겼다.

 

  고흐가 마지막 남짓을 보내고 열정적으로 매일 씩을 그리고 생을 마감한 이곳이다. 그의 체취가 묻어 나오는 , 조그만 여인숙 , 그가 죽었던 밀밭, 그리고  잠들어 있는 , 그가 화폭에 담아 내었던 마을, 모든 것을 둘러 보았다. 힘든 삶을 살았던 그가 후대에게 가치 있는 많은 것을 남겨 주었다. 볼만 곳이다. 동생 덕분에 내가 알지 못했던 값진 곳을 구경하였다.

 

고흐와 동생 테오 무덤 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