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옷 / 류인혜 

 

 

 

밤새 내린 눈으로 산천이 희다. 편안하게 온 세상을 덮은 흰색의 밝음이 마음까지 환해진다. 이 계절은 순백의 정결함으로 어린아이의 순수를 일깨워 준다. 눈이 내리면 모두 천진난만한 마음이 되어 저절로 즐거워지는가 보다. 아름다운 새 옷을 입은 듯한 기쁨을 주는 겨울의 아침을 사랑하고 싶다.

흰옷은 신부가 일생의 가장 귀한 날에 입는 순결한 처녀의 상징이다. 평생을 같이할 신랑을 맞이하는 날, 아무도 접근하지 못한 성스러운 순결을 자랑한다. 정결한 그 의식의 절정은 이제 굳게 닫아두었던 처녀림의 문을 여는 것이다. 이제 나무들도 무성한 사랑의 숲을 이루려는가 보다.

깊은 겨울을 지나면서 설날이 다가오면 새 옷을 장만한다. 밤이 늦도록 화로 앞에서 인두를 꽂아놓고 식구들의 한복을 짓던 할머니와 어머니, 작은 고모의 모습이 생각난다. 새로 만든 옷을 입고 새해의 인사를 드리는 일은 세뱃돈의 유혹이 아니라도 새해를 여는 즐거운 추억이다.

자연도 겨울옷을 입고 좋은 내색을 숨기며 그 즐거운 마음의 무게로 숨을 죽이고 있다. 눈이 내린 날에는 먼 곳을 가는 여행객의 마음으로 버스를 탄다. 긴 여정을 앞에 둔 듯 외로운 눈길로 차창 밖을 내다본다.

길가의 나무들도 눈옷을 입고 있다. 나뭇가지마다 소복이 쌓여 빈 가지로 떨고 섰던 나무를 단장해 준다. 흰 눈으로 지어 입은 모습이 우아하고 귀부인처럼 의젓하다. 겨울옷을 두툼히 입은 나무가 고맙고 또 반갑다.

나무는 옷을 갈아입는다.

나이테를 만들어내는 세월의 옷을 해마다 한 벌씩 속 깊이 쌓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