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 박완서
무슨 소리였을까? 청각을 잔뜩 곤두세워 봤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거의 완벽한 고요였다. 불을 켜고 시계를 보니 자정을 좀 지난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이렇게 주위가 고요하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미친 듯이 질주하던 차바퀴가 급브레이크를 걸 때 생기는 지긋지긋한 소리에 잠이 깨기 알맞은 시간이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차들이 급하게 달리는 도시의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아, 참 내가 찻길에서 한참 떨어진 산골짝 동네로 이사를 했지. 그 생각이 나자 비로소 나를 둘러싼 정적이 이해가 되었다.
그래도 억울하긴 마찬가지였다. 초저녁잠이 많은 대신 한번 잠이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나쁜 버릇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열시도 못 되어서 눈꺼풀을 덮어 누르는 수마 때문에 자리에 들어 실컷 자고 났는데도 미처 그날이 다 가지 않은 자정 전일 때는 새벽을 기다리기가 참으로 지루했다. 그럴 때는 책을 읽든지 글을 쓰든지 하면 될 터인데 왜 그렇게 잠에 집착을 하는지 모르겠다. 밤에 자두지 않으면 다음 날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조바심할수록 잠은 멀리 달아나고 망령된 생각들이 머릿속을 엉망으로 어지럽힌다. 여북해야 이사할 때 사람들이 으레 하는 부자 되라느니 건강 하라느니 하는 덕담을 흘려들으며 속으로 제발 새집에서는 단잠을 잘 수 있기만을 빌었을까.
다행히 이사를 하고 나서 적어도 다섯 시간 이상은 내쳐 잘 수 있게 되었다. 팔차선 대로변에서 산골짝으로 옮긴 덕이라 여기가 안심했었는데 그게 아닌가. 무엇 때문에 잠을 설쳤다는 걸 알아내고 싶어 안달을 할수록 잠은 멀리 도망가고 가까이 들리는 건 정적뿐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안 들리는 게 정적이어야 하는데 나는 분명히 정적을 듣고 있었다. 이 부드럽고 포근한 정적의 감촉은 청각이 아니라 촉각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 부스럭 거릴수록 잠이 멀어질 것 같은 위험성을 무릅쓰고 창호지 문을 열었다. 창호지 문밖 유리문을 통해 저만치 길모퉁이를 밝히는 가로등이 보였다. 가로등 불빛 속을 눈발이 분분히 날리고 있었다. 아아, 바로 저 소리였구나.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비유한 시인도 있었지만 내 귀는 그렇게 밝지 못하다. 나를 깨운 건 소리가 아니라 느낌이었다. 고요, 평화, 부드러움의 감촉이었다. 나는 다시 자리에 들어 황홀하고 감미로운 수면 속으로 서서히 침몰했다.
설이 지나고 제법 해가 길어진 어느 날 아침이었다. 곧 해가 뜨려나, 파스텔 조의 노을빛을 받은 숲의 나무들이 흡사 꼼지락대는 것처럼 보였다. 겨우내 맨몸으로 삭풍을 견딘 늠름하고도 날카로운 가장귀들이 마치 간지럼을 참듯이 들썩이고 있는 게 암만해도 수상쩍었다. 나는 숲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마당 끝까지 걸어갔다. 우리 집 마당 끝은 조그만 시냇물을 사이에 두고 숲과 연결돼 있다. 바람 없는 조용한 새벽이었다. 밤나무들은 아직도 칙칙한 작년의 갈잎을 다 떨구지 못하고 달고 있었다.
지난겨울 강풍이 휘몰아치던 날, 쏴아 하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창밖을 보니 어마어마한 수의참새 떼가 숲에서 곧장 우리 집으로 쳐들어오는 게 아닌가. 그 맹렬한 기세가 마치 유리창도 뚫을 것 같아 나는 본능적으로 방바닥으로 몸을 낮추었다. 참새 떼의 정체는 강풍을 탄 밤나무의 갈잎이었다. 그날 밤 강풍에도 마저 떨구지 못하고 남아 있는 갈잎들조차 꼼짝 안할 정도로 바람 없는 아침이었다. 온갖 새들이 우리 마당까지 날아와 놀다 갔기 때문에 그것들이 동네 어딘가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으려니 여기긴 했어도 숲속에 미지의 새들이 그렇게 많이 살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시방 도대체 뭘 하고 있기에 나직이 저렇게 즐겁게 속닥거리고 있는 것일까. 새들이 사랑을 나누는 시간일까? 품고 있던 알이 껍질을 깨고 나오는 걸 보고 좋아서 저러는 걸까? 먹이를 찾으러 나가는 가장을 환송하는 지저귐일까? 아니면 미지의 새들이 서로 봄이 멀지 않았다는 걸 소통하면서 기쁨을 나누는 소리일까? 숲속의 생태계가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고, 번식하고, 잡아먹고, 잡아먹히면서 겨울을 나고 봄을 맞이하려 하고 있구나. 내 눈에만 잘 안 보인다뿐 엄연히 존재하는 아름답고도 조화로운 살아 있는 세상이 내 이웃이라는 게 얼마나 신기하고 감동스러운지 가슴이 울렁거렸다.
정초에 이웃에 사는 학자 댁에 초대를 받았다. 손 가는 음식을 너무 많이 차려서 황공했다. 언제 이렇게 많은 음식을 차렸느냐고 했더니 학자 남편은 웃으면서 저 사람이 밤새 똑딱거렸다고 했다. 밤에 집필을 하는 그의 습성을 아는 나는 시끄러워서 글도 제대로 못 쓰셨겠다고 했더니 아니라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듣기 좋은 소리가 음식 만드는 소리라고 했다. 나는 그의 대답을 들으면서 평소 무뚝뚝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이 부부가 실은 참 금슬이 좋은 부부였구나 싶어 절로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