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와 견디기 / 신현식
버티기와 견디기는 차이가 있을까?
‘버티다’의 사전적 해석은 ‘어려움을 참고 견디거나 당해 내다’이다. 그러나 ‘견디다’의 사전적 해석은 ‘시련이나 고통을 참아내다’로 되어있다. 언뜻, 그 말이 그 말처럼 보인다.
그런데 버티기와 견디기를 곰곰 새겨 보면 차이가 있어 보인다. 버티기가 극복하는 대상은 ‘어려움’이고, 견디기의 대상은 ‘시련과 고통’이다. 그러니 견디기가 한 단계 더 높아 보인다. 또, 버티기의 ㅂ자는 충격을 받으면 쓰러질 듯 보이는 모양새다. 그러나 견디기의 ㄱ자는 다가오는 시련과 고통을 삼킬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어감으로도 다르다. 버티기는 버둥거리는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견디기는 날을 세우고 올 테면 와라 하는 비장감마저 감돈다. 그래서 버티기 보다는 견디기가 더 강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버티어 봐!”라는 말을 자주 쓴다. 자리에서 물러나지 말라는 뜻일 게다. 그 말 속에는 언젠가는 밀려 나더라도 그때까지는 참아보라는 뜻이 함뿍 담겨있다.
어릴 때는 대체로 버티기의 연속이다. 공부가 재미없고 하기 싫어도 책상에서 버티어야 한다.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거나 두들겨 맞더라도 버티어야 한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해 눈총을 받아도 버티어야 한다. 군대의 기합이 아무리 세도 버티어야 한다.
그러나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부터는 버티기로는 모자란다. 상사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도 견뎌내야 한다. 하는 일이 힘들어도 견뎌내야 한다. 아내의 잔소리가 심해도 견뎌내야 하고, 능력 없는 남자라며 구박을 해도 견뎌내야 한다.
주름이 깊어지면 견디기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사는 재미가 없고 왜 사는가 싶은 생각이 들어도 견뎌야 한다. 자식들이 속을 썩이고 무시해도 견뎌야 한다. 늙어 병이 들어 고통스러워도 어떻게 하던 견뎌내야 한다.
이처럼 젊었을 적엔 무엇이든 버티기로 대응할 수 있다. 고통과 시련까지도 버티기로 이겨낼 수 있다. 두 다리에 힘이 있으니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설령 버티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작은 어려움도 시련과 고통으로 느껴진다. 그러니 버티어서는 안 된다. 어쨌든 견뎌내어야만 한다. 넘어지면 일어날 힘이 더는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결국, 견디어내는 것으로 마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