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형문자 / 류영택
반구대 암각화를 보고 있는 듯하다. 실물 크기로 만들어 놓은 경주박물관 벽에 걸린 신석기시대 암각화 말이다. 마당 한구석 지난 날 새겨놓은 그림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글을 깨우치기 전에 상형문자부터 배웠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내 스스로 문자를 그렸다. 접시모양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 점 하나를 찍으면 눈(目)이 되고, 작대기를 이어가면 살찜도 없는 머리통만 있는 한 마리 새가 되고. 죽 그어진 선에 사다리 모양 테두리 없는 작대기를 긋다보면 대가리만 있는 앙상한 한 마리 갈치 그림이 된다.
그 중 제일 많이 그렸던 게 갈치였다. 한여름 땡볕을 피해 담벼락 그늘에 앉아 꼬챙이로 그림을 그렸다. 바닥에 그려놓은 그림을 이내 발로 문지르고 다시 그 자리에 갈치를 그렸다.
한참을 그림에 빠져 있다 보면 담벼락에 바짝 붙어 있던 그림자가 어느새 저만치 물러나 있고, 장에 갔던 어머니가 마을 초입에 들어서며 '영구야'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손에 들고 있던 꼬챙이를 팽개치고 한걸음에 달려가면 행여나 비린내가 묻을 세라 어머니는 소금에 절인 간 갈치를 위로 치켜든 채 나를 끌어안는다. 나는 그때마다 대롱대롱 세 가닥 짚에 묶인 갈치를 달라며 소리를 친다.
손목에 짚을 훌쳐 감고 껑충껑충 삽짝을 향해 뛰면 갈치 냄새를 맡은 워리도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코를 끙끙댄다. 그러면 나는 사정없이 월리의 배를 걷어찬다. 워리는 그런 내가 좋은지 아니면 갈치가 좋은지 번쩍 손을 치켜든 나를 향해 펄쩍펄쩍 높이뛰기를 한다.
어두육미, 그래서 그런지 맛있는 갈치 대가리는 늘 내 몫이었다. 하지만 나는 맛있다는 갈치머리보다 아버지의 밥상에 놓인 몸통에 눈길이 갔다. 그리고 아버지의 밥그릇에 담긴 하얀 쌀밥을 볼 때마다 입속의 꽁보리밥을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매끈거리는 보리밥은 아무리 씹어도 이쪽저쪽 양 볼을 타고 넘을 뿐 씹이지가 않았다. 나는 입속을 맴돌기만 하는 꽁보리밥을 꿀꺽 삼키며 하루 빨리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이 세상 아버지, 아버지들만이 갈치 몸통에 하얀 쌀밥을 먹는 줄 알았다. 그리고 쌀밥은 반만 먹고 나머지는 반은 꼭 남겨야만 하는 줄 알았다.
다시 그림을 바라본다. 누가 이런 그림을 보고 갈치라고 하겠는가. 입을 향해 발라먹고 또 발라먹은 갈치대가리, 눈과 살찜이 붙어 있는 대가리와 다르게 몸통은 앙상하게 뼈만 남아있다. 내가 왜 이렇게 그림을 그렸을까. 엉성하긴 하지만 결코 왜곡된 그림이 아닌데도 왠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하도 갈치가 먹고 싶어 그림 속의 살찜마저도 내가 다 발라먹은 것인가. 아니야, 그게 아니야. 통통했던 몸통을 끝내 다 발라먹지 못하고 남겨놓았던 건 아버지의 목에 가시가 걸려 그랬던 것이야.
김이 무럭무럭 피어나는 순대, 철판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막창, 먹을거리를 잔뜩 쌓아놓은 가게 앞을 지나칠 때마다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지만 얄팍해져만 가는 지갑을 매만지며 돌아설 때면 왠지 갈치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쾍쾍 기침이 튀어나온다. 어릴 적 그려놓았던 갈치그림은 지난 날 아버지의 모습이며 어른이 된 지금의 내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