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재 글벗들과의 대화 / 정호경
자식들은 자라서 제각기의 보금자리를 꾸려 모두 떠났다. 그러고 보니 두 늙은 내외가 어촌 산등성이에 조그만 집을 마련하여 서울에서 이삿짐을 옮겨 온 지도 십 년이 지났다.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는 해돋이와 해넘이 구경도 처음 한두 번의 구경거리에서 끝나고, 이제는 텅 빈 마루에 앉아 나는 돋보기로 신문을 뒤적거리고, 집사람은 깜박깜박 졸면서 시장에서 사온 파를 다듬고 있다. 가끔 산새가 창 너머로 기웃거릴 뿐, 집안은 절간처럼 조용하다. 그런 가운데 나는 내 서재 속의 오랜 벗들과 대화하며 여생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하찮은 글이나마 청탁받은 글줄이라도 쓰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좁은 서재로 들어간다. 책은 몇 권 되지 않으면서 방이 비좁아서인지 사면 벽을 가득 채우고는 천장에까지 닿아 있다. 문인학자들은 누구나가 다 그렇겠지만, 이사할 때 가장 애를 먹는 것이 다름 아닌 책이고 보니 나도 이곳으로 옮길 때 큰마음 먹고 반으로 줄였지만 와서 보니 거의 그대로다. 한우충동汗牛充棟이라는 문자가 나에게는 가당찮은 말이지만, 한평생의 내 욕심이고 보니 무엇보다 애착이 가는 말이다. 삶이 답답하고 적적할 때 흔히 서재로 들어가, 낡아 바스락거리는 이런저런 시집이나 소설집을 조심스레 뒤적인다.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아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의 시 <향수鄕愁>를 따라 고향을 찾아 갔다가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는 아쉬움만 안고 다시 각박한 현실로 돌아와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를 읽는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늦여름의 산바람 따라 가을이 오면 나는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며 다시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에 귀를 기울인다.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시인의 고고한 삶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 어려워 쉬우면서도 절실한 정감의 시를 찾다 보니 천상병의 <귀천歸天>이 어느새 다가와 이를 조용히 펼쳐 든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리라/
감동적인 시도 한두 번이지 계속 음미하다 보면 맛이 떨어져 다른 데로 눈이 옮겨 간다. 그래서 나는 이를 미리 알고 얼른 방향을 돌려 구수하고 재미있는 소설 속의 이야기를 찾아 기웃거리다가 강원도의 관광지로 이름난 평창의 메밀밭으로 눈이 간다. 요즘 관광지로 이름이 난 이곳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효석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을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아 이 기회에 그중 묘사가 뛰어난 밤길 장면만을 여기 옮겨 본다.
길은 지금 긴 산 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중략) 방울 소기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 선 허생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실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 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요즘의 텔레비전 드라마나 소설에서 젊은이들의 애정 표현은 남이 보는 앞에서 더욱 신이 나고 당당해서 딱정벌레처럼 한번 붙었다 하며 중인의 시선도 두렵지 않으니, 옛날의 숨어서 남몰래 속삭이던 은근하고 차진 사랑이 그리워서 여기 김유정의 단편 <동백꽃>을 모처럼 펼쳐 본다.
그리고 뭣에 떠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내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그만 아찔했다.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말고 어딜 갔어?”
사람의 욕심은 날이 갈수록 태산인데, 지구의 유효 기간도 이제 거의 다 되어서인지 가엾은 중생의 욕망과 불안은 연옥의 불길로 치솟고 있다. 나인들 예외일 수 없는 한 사람의 미련한 속중으로 마음을 가다듬어 사람이 되고자 김동리의 단편 <등신불等身佛>에 대한 젊었을 적의 감동을 되살려 다시 읽어본다.
원혜대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해서 된 불상이라면 과연 지금의 저 금불각의 등신 금불같이 될 수밖에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부처님 가운데서 그렇게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아로새긴 부처님(등신불)이 한 분쯤 있는 것도 무방한 일인 듯했다. (중략) "자네 바른손 식지를 들어보게." 했다. 나는 달포 전에 남경 교회에서 진기수 씨에게 혈서를 바치느라고 내 입으로 살을 물어 뗀 나의 식지를 쳐들었다. 그러나 원혜대사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 더 말이 없다. (중략) 테허루에서 정오를 아뢰는 큰 북소리가 목어와 함께 으르렁거리며 들려 왔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는 이곳으로 귀향 아닌 귀향을 했다. 집에 앉아 있어도 시냇물 소리가 바람 따라 들려오고 산새 울음소리도 정겹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바다를 내려다보면 갈매기들이 어린 시절의 종이비행기처럼 나지막하게 하늘을 돌고 있다. 이렇게 마음이 평화롭고 한적할 때는 내 마음에 당기는 수필 한 편, 조지훈의 수필 <무국어撫菊語>를 펼쳐 든다.
논밭이 가까운 나의 집에는 이따금 메뚜기가 논밭을 뛰어든다. 수탉은 메뚜기를 잡으러 쫓아가다간 놓쳐버리고, 담장 위에서 꼬끼요 하고 길게 목청을 뽑는다. 무척 고요한 대낮에 낮닭 소리가 끝나면 마을은 더욱 고요해진다. 서울 성북동 아무 운치도 없는 집을 꾸미라고 k화백이 보내주신, 손수 가꾼 국화 분을 하룻밤 자고나니 닭들이 꽃과 잎을 모조리 따 먹고 부러진 줄기가 툇마루에 떨어졌더니, 닭도 시골 닭은 꽃을 먹기는커녕 국화 그늘 아래 즐거이 볕을 쬐며 존다.
내 서재를 찾아온 한 권 한 권의 책들은 모두 제각기의 사연이 있다. 먼지를 둘러쓴 채 묵묵히 꽂혀 있는 이런저런 책들은 모두가 내 삶의 증인이요, 나의 역사인 셈이다. 오랜 세월 나를 따라 셋집을 전전하며 고생하고 살아왔기에 이들에게 가는 정은 각별하다.
단 한 줄의 하찮은 글이나마 쓸 수 있는 오늘이 있게 해 준, 내 서재의 오랜 글벗들에게 나는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 동안의 정분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