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 / 이은희

 

 

 

세 남자와 소나무 숲길을 걷고 있다. 정상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지만, 약수터에서 오르는 이 길을 참 좋아한다. 오르막이 이어져 등줄기에 땀이 흐르면, 무거웠던 몸도 가벼워지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스치는 풍경도 일품이고, 아버지에게 힘들다며 쉬어가자는 엄살을 부려도 애교로 보이기 딱 좋은 코스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좁은 산길을 가로막고 드러누운 소나무를 발견한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을 낱낱이 지켜보던 소나무가 아닌가. 솔잎들이 성성한 걸 보니 쓰러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듯싶다. 세월의 풍상에 꺾임 없이 청청하게 서 있을 나무라 여겼는데… 이럴 때 무엇이 문제인지 나무의 언어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뿌리째 뽑힌 소나무에 놀라움과 안타까움에 그 주변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발길을 돌렸다.

엊그제 내린 폭설 탓인가 보다. 소나무가 어찌 허깨비처럼 뿌리째 뽑힐 수가 있을까? 겨울의 정취를 물씬 느끼고, 시련을 겪고 나서도 변치 않음을 상징하는 세한삼우歲寒三友)가 대나무와 매화나무 그리고 소나무가 아니던가. 그런데 저렇게 가볍게 쓰러지다니……. 뿌리 깊은 나무라면 저리되지도 않았을 거다. 사람들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듯, 무에 그리 바쁜지 쓰러진 나무를 무심히 스쳐간다.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다.

며칠 전 진눈깨비가 내려 도로가 질척이더니, 저녁에 함박눈으로 바뀌어 하늘 아래 모든 것들을 하얗게 덮어버렸다. 다음 날 출근길엔 눈꽃 세상이 펼쳐져 환호성을 지르며, 마지막 눈꽃을 볼 기회라고 마음이 들떴다. 그러나 그림의 떡, 산으로 달려가는 자유인을 동경하며 구속된 처지를 한탄으로 끝이 났다. 폭설이 소나무 숲에 드리운 불길함을 소인이 어찌 알 수 있으랴.

산 위로 갈수록 소나무 잔가지들이 부러져 여기저기에 나뒹군다. 산중에서 살아본 적 없어 폭설이 내리거나, 폭우가 훑고 간 뒤에 산의 참모습을 볼 기회가 없었다. 진정 그 말이 맞는 듯싶다.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날이면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에 산중의 정적이 무너진다는 소리를, 그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는 지인의 말을 말이다. 

폭설로 산의 모습은 정녕 여느 때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고 난 후에 잔해처럼 널브러진 성성한 어린 가지를 보며 자연은 참으로 냉정하다고 느낀다. 절기상 해토머리인 점도 있지만, 나무를 저만큼 키우려면 수많은 세월이 흘러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무들의 발밑을 살피니 소나무는 낙엽송과 다르게 뿌리가 땅 위로 돌출되어 있다. 사람들의 수없는 발길질도 문제지만,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이니 어찌 많은 적설량을 견디겠는가? 무거운 눈을 이기지 못한 잔가지와 줄기를 단단히 채우지 못한 나무 또한 허리에서 뚝 부러져 있어, 자연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다시금 깨우친다. 이 모두가 우리가 편안하자고 만든 문명 때문이란다. 나날이 남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바다의 수온이 높아져 이상 기온 현상이 이어진다니 깊게 자성할 일이다.

사계절이 뚜렷하던 우리나라도 온난화로 봄과 가을이 사라질지 모른다고 한다. 아름다운 두 계절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흘러간다고 여기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 모두가 과욕을 부린 탓이다. 다가올 미래의 환경을 예감하면서 그를 외면한 결과다. 심한 몸살을 앓고 있으면서도 말없이 가지 끝에 새움을 준비하는 나무들. 긴 겨울을 이기고 고개 내민 꽃망울의 낯빛은 맑기만 하다. 인간은 작은 상처에도 불편해하며 포기를 생각할 텐데 말이다.

오르막에서 유난히 숨 가빠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지난봄에는 청년처럼 오르내리던 산길인데, 당신이 먼저 ㅂ닥에 앉아 쉬고 있다. 얼마 전 갑자기 쓰러진 후유증인 듯싶다. 앞으로 아버지와 이런 멋진 산행을 몇 번 더 할 수 있을까? 진정 바쁘다는 핑계 달지 말고 아버지랑 함께 하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또 한다.

산길을 걸으며 잃어버린 초심으로 돌아간다. 내가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걸 증명하는 셈이다. 힘없이 쓰러진 나무는 삶의 중심으로 들어가 지금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인지 주위를 둘러보라고 하는 것 같다. 부질없는 일에 목숨을 내놓고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우쳐 순간순간을 잘 살아내는 일이다. 부디 뿌리 깊은 나무처럼 내 삶도 사유가 깊어졌으면 한다.

뒤늦게 목표지점에 다다르니, 쉼터 의자에 안장 미소 짓는 세 남자가 보인다. 나를 세상 빛을 보게 한 아버지와 힘겨울 때 어깨를 내주는 남편, 모처럼 산행에 따라나선 아들이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내 곁에 있으니 든든하다. 하지만 물기 잃은 고목처럼 야위어 가는 아버지, 흔들림 없이 당신의 자리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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