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돋이는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상징한다. 한데 클로드 모네는 해돋이를 묘사한 그림을 전시에 출품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제목도 ‘인상, 해돋이(1872년·사진)’였지만, 그림을 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비평가들은 혹평을 퍼부었다. 왜였을까?

모네는 이 그림을 1872년 고향 르아브르를 방문했을 때 그렸다. 해 뜰 무렵 호텔 방에서 내려다본 항구의 모습으로, 빛을 받아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풍경을 재빠른 붓놀림으로 표현했다. 그림의 초점은 노 젓는 사람이 탄 두 척의 작은 배와 바다 위로 떠오른 붉은 태양에 맞춰져 있다. 뒤에는 돛대를 단 범선들과 증기선 굴뚝들이 보이지만, 실루엣처럼 희미하게 처리돼 형태를 알아보기 쉽지 않다.

완성된 그림은 1874년 4월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처음 공개됐다. 국가가 주도하는 보수적인 파리 살롱전에 대항하기 위해 젊은 미술가들이 기획한 전시였다. 드가, 피사로, 르누아르 등 30명의 미술가가 참여하고 4000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며 화제를 모았다. 지금은 미술사를 빛낸 가장 역사적인 전시회로 평가받지만, 당시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비평가 루이 르로이는 신문에 기고한 전시 리뷰에서 모네 그림을 콕 집어 비판했다. 그림이 아니라 인상을 그린 스케치에 불과하다며 “초벌 상태의 벽지도 이 바다 풍경보다는 더 완성도가 높을 것이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조롱의 의미로 ‘인상주의자들의 전시회’라고 명명했다.

모네는 이 조롱을 기꺼이 받아들여 자신들을 아예 ‘인상파’라고 불렀다. 그렇게 인상파라는 용어가 미술사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혁신적인 것은 낯설고, 낯선 건 배척당하기 일쑤다. 그러나 혁신성이 지속되면 역사를 새로 쓴다. 만약 이 그림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인상파를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지도 모른다. 비난의 말에도 상처받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역사로 만들어버린 모네! 그의 용기와 배짱이 그림 속 붉은 태양보다 더 뜨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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