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이 된 실패작[이은화의 미술시간]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 하나를 손꼽으라면, 단연 ‘별이 빛나는 밤(1889년·사진)’일 테다. 짙고 푸른 초여름 밤, 하늘에는 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로 노란 별들과 초승달이 밝게 빛나고 있다. 땅에는 커다란 사이프러스 나무와 함께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 보인다.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이 그림은 노래로 만들어질 정도로 고흐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명화다. 그런데 정작 화가 자신은 이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왜일까?

아를에서 자신의 귀를 자해한 사건으로 동네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고흐는 1889년 5월 프랑스 남부 생레미에 있는 요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했다. 스스로 정신병을 인정한 것이었다. 이 그림은 1889년 6월 중순 병실 창문에서 바라본 풍경을 그린 것이다. 입원한 지 한 달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그렇다고 실제로 밤에 그린 건 아니고 수많은 밤 동안 봤던 장면을 기억해 낮에 그렸다. 생레미 마을의 풍경도 실제와는 다르다. 교회 첨탑은 고향 네덜란드에서 봤던 것이고, 사이프러스 나무는 의도적으로 크게 앞쪽에 배치했다. 그러니까 실제 풍경과 기억 속 풍경, 상상한 장면이 한 화면 속에 뒤섞여 있다. 어떻게 보면 정신병원 생활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화가의 비참한 심정과 폭발할 것 같은 그림에 대한 욕망, 건강 상실에 대한 우울 등을 표현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가장 힘든 시기를 담고 있어서일까. 고흐는 동료 화가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그림을 ‘실패작’이라고 언급했다. 화가 자신의 평가와 달리, 그림은 그해 9월 파리 앙데팡당전에 전시돼 호평을 받았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해.”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말이다. 그랬다. 현실은 아프고 힘들었지만 별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꿈을 꾸는 것처럼 행복했을 터다. 화가는 비록 실패작으로 여겼지만 밤하늘에 빛나는 그림 속 별들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도 꿈꾸게 만든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