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조제프 룰랭의 초상화’, 1889년.빈센트 반 고흐 ‘조제프 룰랭의 초상화’, 1889년.

푸른색 우체부 옷을 입은 남자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구레나룻과 양 갈래로 나뉜 북슬북슬한 턱수염이 인상적이다. 초록색 배경에는 꽃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 남자 이름은 조제프 룰랭. 아를 시절, 빈센트 반 고흐에게 편지를 배달해 주던 우체부다. 고흐는 그의 초상화를 무려 여섯 점이나 그렸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고흐의 그림 속 주인공이 되었을까?

고흐가 화가 공동체를 꿈꾸며 남프랑스 아를에 도착한 건 1888년 2월. 룰랭은 아를에 있는 역에서 근무하는 우체부였다. 고흐는 네덜란드에 있는 동생 테오에게 그림이나 편지를 보내기 위해 자주 우체국에 갔다가 그와 친해졌다. 룰랭은 열렬한 사회주의자이자 가족에게 헌신하는 47세의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는 모델 구할 돈이 없던 가난한 화가 친구를 위해 기꺼이 모델이 되어 주었다.

1888년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고흐는 룰랭의 초상화 여섯 점을 그렸다. 그중 석 점은 배경에 꽃들이 있는데, 이 그림이 가장 마지막 버전이다. 빠른 붓놀림으로 그린 인물의 모습과 달리 양귀비, 옥수수꽃, 데이지 등이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37년의 짧은 생을 살았던 고흐는 아를에서 가장 행복했고, 걸작도 많이 남겼다. 하지만 폴 고갱과 다툰 후 자신의 귀를 자르면서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친구 고갱이 자신을 급히 떠나버린 것과 달리, 룰랭은 병원에 있던 고흐를 위로하며 보살펴 주었다.

고흐는 초상화를 그릴 때 사진처럼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라 상상과 기억, 강렬한 색채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이 그림 역시 룰랭이 더 나은 돈벌이를 위해 마르세유로 떠난 뒤, 기억에 의존해 그렸다.

가장 힘들 때 곁에서 위로해 주는 이가 진정한 친구다. 배경에 그려진 붉은 양귀비는 위로와 위안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 고흐에게 이 아를의 우체부는 여섯 번이 아니라 육십 번도 더 그려서 기억하고픈 세상 고마운 친구가 아니었을까.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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