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에세이] 영광의 그림자를 품고

 2025-03-19 (수) 12:00:00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북쪽으로 올라가니 1859년 지어진 ‘피어슨스 청량음료’ 건물이 보인다. 지금은 식당이지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얼음이 귀하던 시절, 이곳은 음료와 얼음을 함께 보관하던 창고였다. 먼지 쌓인 옛 음료수 병이 35달러에 팔리고 있다. 누가 사 가는 걸까?


플레서빌은 리바이스 청바지의 고장이기도 하다. 1853년,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광부들의 바지가 쉽게 해어진다는 점에 착안해 질긴 천막용 천으로 청바지를 만들었다. 상점 안에는 색이 바래고 구멍 난 청바지들이 ‘빈티지’라는 명목으로 비싼 가격표를 달고 있다.

 

플레서빌 철물점은 북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상점으로, 마치 금광촌 박물관 같다. 광부들이 사용했던 곡괭이와 금 접시뿐만 아니라 나무 흔들의자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구경하는 재미는 있지만, 선뜻 사고 싶지는 않다. 한때 번영했지만, 이제는 옛 명성만 남은 마을. 천년 가는 영화가 없듯, 영원한 영광도 없다.

맥주집 ‘퍼브(pub)’에 들어갔다. 금광촌 술집에서 들은 이야기를 소설의 소재로 삼은 작가도 있다. <톰 소여의 모험>의 마크 트웨인이다. 남북전쟁으로 뱃길이 막히자 서부로 향한 그는 금광에서 실패하고 신문사에 글을 기고하며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엔젤스 캠프 호텔 술집에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캘러버라스 카운티의 명물, 뜀뛰는 개구리>를 썼다.

흥겨운 음악 속, 백발이 성성한 손님들이 복도로 나와 춤을 춘다. 왜 이 한적한 마을을 떠나지 않을까. 조상들의 땀을 기억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밖으로 나오니 황금빛 노을이 벨 타워 꼭대기의 종을 감싼다. 한때 이곳을 뜨겁게 달궜던 추억들을 어루만지는 것 같다. 모든 것은 떠오르면, 결국 지기 마련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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