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에 내리자마자 기다리던 친구의 차에 실려서 집으로 갔다. 시간이 되자 약속된 친구들이 속속 모여들어 40년 전의 사총사가 다시 뭉쳤다. 

우리는 햇병아리 선생 시절 학교에서 만났다. 아이들이 떠난 오후면 내 교실에 모여 풍금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고 하교 길에는 동래 시장에 들러 잔치국수와 잡채를 먹으며 낄낄대기도 했다. 

오후 수업이 없던 어느 날. 007 작전인 듯 한 사람씩 몰래 학교를 빠져나와 육교 밑 버스정류장에 집결했다. 태종대로 바닷바람 쐬러가자는 즉석 제안이 통과되었기 때문이었다. 핸드백이 큰 친구는 그걸 옷 밑에 숨기고 나오느라 혼났다고 했다. 

넷 중에 내가 두번째로 결혼을 했다. 한 친구는 내가 결혼한다는 말에 집에 가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떠나도 나는 늦게까지 남아서 자기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줄 줄 알았단다. 너무나 갑자기. 후다닥 결혼하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란 동료 여교사 네 명이 연달아 결혼을 결정해버렸다. 나이 드신 선생님들은 올해 부조금이 너무 많이 나간다며 농담처럼 불평을 하기도 했다. 내 결혼 발표 이후로 처녀선생님들은 이렇게 미적대며 밀당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걸 깨달았단다. 어떤 신랑은 내가 자기 결혼을 성사시켜준 공신이라며 싱글거리기도 했다. 왜 사람들은 나를 노처녀인채로 자기들 곁에서 오래오래 놀아줄 줄로 알았을까. 독신주의를 부르짖지도 않았는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집 주인 친구가 뒹구는 우리에게 사과를 깎아 먹인다. 아침의 사과는 보약이란다. 모두 부엌에나가 아침상 준비를 하는 동안 방 정리를 한다. 네 개의 베개가 전혀 다른 방향과 자세로 널부러져 있다. 각기 다른 무게를 한 밤 내내 잘 견딘 이것들. 이제 그 무게를 내려놓고 눌려진 몸을 서서히 회복시키고 있다. 고생했구나. 하나씩 집어 모아 놓았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듯 잘 어울린다. 우리들처럼. 
창밖으로 보이는 낙동강은 전혀 낯설다. 저곳이 옛날 구포다리고 저 위로 올라가면 하단이고 을숙도라고 하지만 옛날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뚝딱뚝딱 친구들은 솜씨를 발휘하여 고명을 갖가지로 얹은 떡국을 끓여내었다. 나물까지 세 가지나 등장했다. 맛있게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전화가 따르르 온다. 출장 갔다는 친구 남편이다. 
어덴교? 아침은 잡솼어요? 
어느 호텔에서 주무셨능교?
질문 요지를 가만히 맞춰보니 출장을 간 게 아니다. 쫒겨(?)난 것이다. 친구는 놀란 우리들에게 남편이 자진해서 배려해준 거라며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믿을 수가 없다. 경상도 남자치고 와이프 친구들 편하게 놀라고 집 비워주고 호텔에 가서 자는 남편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곧 다대포로 갈 거니까 집에 와서 옷 갈아입고 출근하시라며 또 명령(?)을 하달한다. 대화 내용은 심히 불손한데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경쾌하고 하하 웃는 웃음 소리는 즐겁다. 부부가 얼마나 서로 사랑하고 있는지.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 알겠다. 웃는 눈을 감싸고 살며시 접혀지는 친구의 눈가 주름이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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