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여행 중에 기념품과 선물을 살만한 것이 있나

동네를 지날 때마다 가게를 기웃거리고 

여행 가이드한테 일부러 시장에 내려달라고 부탁도 했다. 

암만 지갑을 꺼내어들고 다녀도 사고 싶은 물건이 없었다. 

옛날 우리나라의 60년 대에나 볼 수 있었을 법한  물건들 뿐이었다. 

천한 색깔의 플라스틱에 금방 연결부분이 뚝뚝 끊어져버릴 것만 같은 생활용품.

둔탁한 올이 숭숭 드러나 보이는 옷. 거칠고 탁한 마무리의 열쇠고리 등.

도무지 선물로는 선택할 만한 물건이 없었다. 

너무 형편없어서 아무 것도 안 사고 돌아왔다.  

이런 걸 선물이라고 들고 왔냐는 타박만 들을 것 같았다. 

그런 것들로 가방을 채우느니 차라리 빈 손으로 돌아가자 하는 마음이었다. 

아무리 다시 오기 힘든 곳이더라도

선물 하나 없느냐는 섭섭한 눈치를 받더라도

그런 조악한 것들로 내 가방을 채우고 싶지는 않았다. 


물건에도 품과 격이 있듯이사람에게도 품과 격이  있다.  

싸구려 물건을 가득 쌓아놓은 쿠바의 가게처럼

그 조악함의 무게에 가끔 진저리를 치게하는 사람도 있다. 

나이가 이만큼이나 들고 난 후에야 여러 사람들이 기피하거나 불편해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은 그 어느 지점의 시공에서 서로 같은 품과 격끼리 주고 받으며

그에 맞는 처세로 세상을 산다. 

그래서 끼리끼리 라는 단어도 생기고

친구를 보면 그를 알 수 있다는 옛말도 생긴 모양이다. 


나의 품과 격은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그것은 나를 대하는 상대방만이 매긴다. 

나는 다만 그 점수가 높기를 바라며 내 그릇의 크기만큼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 

비록 텅 빈 가방으로 돌아갈 지언정  품과 격이 달리 느껴지는 사람은 

내 가방에 담지 않는 것이다.  

외롭다는, 쓸쓸하다는 감정 따위야 내가 다스릴 수 있지만

천하고 사악한 인격이 내 삶에 들어와 

그의 품과 격의 수준만큼 상상한 유치한 가십거리로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런 인격은 세상에 하나 뿐인 달디 단 사랑처럼 다가오다가도

어느날 무섭게 변한 얼굴로 배신을 한다. 

어떠한 세월을 함께 보내었던 어떤 은혜를 입었던 상관이 없다.

조심할 일이다. 


세상의 어떤 축복보다도 만남의 축복이 가장 크다. 

나는 날마다 자녀들을 위해 제일 많이 하는 기도가 

'만남의 축복을 주옵소서. 그리고 그 인연이 죽을 때까지 이어지게 하옵소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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