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네집 내니가 목욕탕에서 미끄러져서 어깨를 다쳤다며
이번 주 내내 결근이라. 
아, 또 새벽부터 저녁까지 딸네로 출퇴근하는 게 일주일째다. 
해가 뉘엿뉘엿지는 프리웨이를 내리면서 오늘 저녁을 어느 식당에서 떼워야하나 하는 생각으로 머리 속이 복잡한데
눈 앞에 In & Out 햄버거 간판이 보였다. 
핸들을 돌려 Drive Thru 라인에 섰다. 
치즈버거와 프렌치 프라이를 주문하고 앞 차를 따라 계산 창구로 갔는데. 핸드백 지퍼를 열고 보니 뭔가 안이 훌빈하다. 오잉? 지갑이 없다. 
어제 저녁 '사이버먼데이'라는 신문 광고에 홀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온라인 샤핑을 해 대었는데
그러고는 크레딧 카드가 든 지갑을 그대로 책상 위에 팽개친 채로 새벽에 운전을 하고 나온 셈이다. 
그 먼 길을 운전 면허증도 없이 다녔구나 하는 마음보다
돈도 없이 덜컥 주문을 해 버렸으니 이 낭패를 어찌하나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뒤를 돌아보니 여러 대의 차가 이미 뒤를 막고 있고
앞 차는 서서히 줄을 빠져 나갔다. 
후진하여 도망도 못 치겠네. 잠깐 스치는 치사한 생각에 픽 웃었다. 
계산대 앞에서 하이 예쁘게 인사하는 아가씨에게 말했다. 
쏘리. 내가 지갑을 잊어먹고 안 가져왔어. 어떻하지?
나를 내려다 보던 아가씨가 눈을 크게 떴다. 나는 핸드백을 다시 뒤지는 시늉을 해 보였다. . 
아가씨는 메네저를 데리고 오겠다고 하더니 곧 뚱뚱한 여자를 데리고 왔다. 
메네저가 오면서 묻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니?
종업원이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9불 27센트
뚱뚱한 여자가 고개를 내밀더니 저녁에 갖다 달라고 했다. 
나는 오늘 저녁은 너무 늦을거니까 내일 저녁까지면 어떠냐고 물었다.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씩 웃더니 그렇게 하라고 한다. 그러고는 계산기에 키를 꽂고는 이리저리 뭔가를 찍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곧 뒤따라 도착한 남편한테 말했다. 
또 사고 쳤구나. 남편의 감탄사는 듣는 둥 마는 둥
나는 이 나이에는 당연하다며 콜라캔마개를 소리나게 뚜욱 땄다. 
둘은 반쯤 식은 햄버거를 먹고 집을 나섰다. 
내일 저녁까지 버티기에는 남편의 베짱은 너무 약하다. 
다시 인앤아웃 가게를 찾고. 메네저를 찾아 돈을 건네주었다. 
그냥 돈만 주기가 섭섭하여 프렌치 후라이 하나도 시켰다. 
메네저는 말했다. 어? 벌써 왔어?
우리는 배가 부른데도 프렌치프라이를 우적우적 먹으며 히히덕 거렸다. 
미국 인심... 아직 살아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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