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락사락 가랑비가 내리는 서울의 새벽 거리. 아스팔트가 헤드라이트 빛을 받으며 자르르 윤기를 낸다.

2009년 어느날에도 오늘처럼 이렇게 새벽 4시에 잠이 깨였다. 

20층에서 내려다 본 도로변에는 전경들의 버스가 일렬로 주차되어 혹시나 일어날지도 모를 소요를 대비했다. 아침 8시 쯤 다시 내려다보니 전경들은 모두 철수하고 광화문 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날은 노무현 전대통령의 노제날이었다.

호텔에서는 전단지를 방마다 문 틈으로 끼여넣어주었다. 밖으로 나갈 때는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운동모나 선글라스,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호텔에 연결된 백화점으로 내려가 전철을 이용하라고 했다. 뭔가 긴장감이 도는 분위기였다. 남편과 나는 아침을 먹고 슬슬 밖으로 나가 보았다. 광장은 노랑 종이 모자를 쓴 사람들이 대열을 지어 앉았고 군데군데 모자를 쌓아놓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나누어주었다. 병물도 마구 나누어 주었다. 우리도 모자를 하나씩 얻어 쓰고 노제 공연을 구경하려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금 있으니 갑자기 군중들이 분노했다. “ 이제는 너 차례다. “ “나쁜 놈, 너는 성할 줄 아느냐” 전하기도 힘든 악담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놀라 어리둥절 하다가 대형 스크린에 비친 이명박 대통령 내외분의 분향 장면을 보고서야 이유를 알았다. 성난 군중들의 고함과 삿대질은 무서웠다. 우리는 그냥 돌아가자며 몸을 돌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그런데 이제는 전혀 다른 느낌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모두 기립하여 우우 환영과 존경의 메세지를 보냈다. 대형 스크린에는 김대중 전대통령 내외분이 분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벌써 세월이 9년이 흘렀다. 그때의 그 장소에 오늘은 비가 내리고 사람들은 바쁘게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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