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는 혼자 동네를 몇 바퀴 걷는 습관이 들었다.
귀에는 MP3 player를 꽂고 들으며, 걷노라면, 밤에만 보이는 새로운 모습들을 만나게 된다. 진한 코발트 빛 하늘에는 도시의 조명들 위로 몇몇 별들이 보인다. 과학시간에 들은 대로라면 내 눈에 들어온 빛은 몇 년 아니 몇십년, 백 년 전에 별들을 떠나서 나에게로 오고 있다. 그 광활함에 비하면 우리 인간 수명이란 과연 얼마나 되나. 뭐 이런 심오한 생각도 하게 되고, 또는 남의 집 앞에 피어있는 빨갛고 노란 색의 꽃들 앞에 잠시 걸음을 멈추서게도 되고 일과에서 쌓였던 것들로부터 잠시 떠나는 시간이 된다.
이렇게 걷든 어느 날, 내 발 앞으로 조그마한 산 토끼 한 마리가 뛰어나왔다. 저녁 끼니를 채우느라 잔디밭에서 식사 중이었겠다. 그런데 이 녀석이 길을 건너서 가다 말고는 멈춰서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다. 밤이니 눈을 마주치지는 못하지만 아무래도 나를 보고 있는 듯하다. 사람을 마주치면 줄행랑을 쳐야 할 텐데, 아니 녀석이 겁이 없나 하면서 의아했다. 이렇게 일주일이면 한두 번을 마주 친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또 마주쳐서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엉뚱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작년초 에 병원에서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나고, 당신께서 저 토끼로 혹시라도 나를 보고 계시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다. 불교의 윤회설을 듣기는 했지만, 믿어지지 않는 종교의 논리로만 여겼었는데. 그러고 보니 저 토끼가 나에게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듯, 꼭 길 한복판에 서서는 빤히 쳐다보고 있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하고 부르고 말았다. 그런 내가 멀쑥해서 얼른 걸음을 재촉하고 말았다.
그런 다음부터는 토끼가 나오던 집 앞에서는 두리번거리고 찾기도 하면서 지나치게 된다. 아마도 살아계시던 분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기가 힘든 마음인가 보다. 몸은 그렇더라도 그분의 영혼은 어딘가에 계실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갑자기 타계하셨으니 하고 싶은 말씀이 분명히 있으셨을 터인데.
오늘 저녁은 그 토끼를 못 보고 들어 왔다. 하늘에는 여느 때처럼 별들이 떠 있었고, 서쪽 하늘에는 그믐달이 보였다. 그리고 빨간 노란 꽃들도 피어 있었고…
4월 24일 2010, 터스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