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7월 들어 지구 온난화 덕으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했을 때였다. 아침 해뜰 무렵 동네를 산책하다가 꼭 멈추게 되는 집이 둘 있다. 그집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도, 멋진 차가 있어서도 아니다. 집 앞에 나무,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 나무에 피어있는 꽃 때문이다. 두 그루 모두 같은 종에 속하는 것 같은 데 꽃의 색깔이 다르다. 하나는 눈처럼 하얗고 다른 하나는 입술연지처럼 연분홍이다.
아침 해가 산마루에서 오르려고 할때 촘촘히 붙어있는 작은 하얀 꽃들을 올려다 보면 그대로 빨려들어가 그렇게 그냥 보고만 있게된다. 남의 집 앞에서 말이다. 동네를 한바뀌 걷고 오는 길엔 연분홍 꽃이 핀 나무앞에 멈추어 한참을 바라본다. 그저 그대로가 좋아서. 그러고 서있는 나를 남들이 본다면 뭐라 할까. 뭐하나 빠진 사람이라고나 안하면 좋고. 아마도 이나무들은 여름마다 꽃을 피워왔으리라. 이 동네에 산지 20년이 되었는데 이제사 내눈에 뜨인셈이다.
궁금해서 internet으로 나무 이름을 찾아 보았다. Crepe 또는 Crape Myrtle이라 불리고 한국에선 배롱나무라고 한다. 여름 내내 꽃이 피어 있어 백일홍이라고도 불린다. 원산지는 인도 중국 한국 일본으로 줄기가 매끌거리는 것이 특이해서 여러가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운다.
그러고 보니 주변 곳곳에 같은 종류의 나무들이 여러 색깔의 꽃을 피우고 있다. 빨간색 자주색 흰색 분홍색. 꽃의 색깔에 따라서 풍기는 분위기가 마치 여러 여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하얀꽃은 청초한 모습으로 학창시절 여대생들의 시낭송회에서 보았던 그 여류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감히 손을 대거나 안아볼 엄두도 못내고 그저 바라만 보게하는 그런 여인.
분홍꽃은 포근한 어머니의 모습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마음을 편하게 감싸주는 어머니의 가슴 같은 꽃이다.
보라빛이 도는 붉은 꽃은 가슴에 안고 그향기를 맡고 싶은 여인의 모습이다. 마음껏 취하도록 맡아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그런 여인.
새빨간 꽃은 이제 막 물이 오른 여인이다. 와 닿는 것은 모두다 끌어들여 녹여버릴 것 같은 욕정으로 뒤틀거리는 모습. 보면 가슴이 뛰어 혹시나 남의 눈에 뜨일까봐 고개를 돌리게 된다.
어느새 9월이 오고, 나롱나무 꽃들도 사라지고 있다. 한 여름의 잔치가 끝나가고, 다시 올 여름에 만날 꽃들을 기다려야겠다.
2018 Tustin에서
나무 전체에 환하게 핀 꽃송이를 보노라면
커다란 꽃다발을 보는 기분이지요.
색깔별로 이렇게 다른 느낌이 그려지니
내년 봄에는 저도 배룡나무 앞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어봐야 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