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외면(外面)한 속물(俗物)

愚步 김토마스

 

겨울날 해질 무렵. 찌푸린 날씨에 바람마저 불어 을씨년스럽다. 나는 버스정거장 벤치에 앉아있다. 한 사내가 비척비척 내 앞으로 다가와 선다. 머리는 산발을 하고 꾀죄죄한 얼굴에 콧물이 길게 늘어져 있다. 초점 잃은 눈을 껌벅거리는 그는 사시나무 떨 듯 두 손을 떨고 있다. 남루한 옷은 때가 잔뜩 묻어있고 지린내마저 나서 불결(不潔)하다는 생각이 일어난다. 그는 멍하니 서서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날 쳐다보기만 한다.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얼른 시선을 돌린다. 서서히 불쾌(不快)한 느낌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왜 하필 나에게 와서 이럴까. 당황스런 상황을 어떻게든 모면해 보려고 불쑥 내뱉은 말. “내가 뭘 도와줄게 있니?” 말없이 나를 바라볼 뿐 답이 없다. 답답해서 못 견디겠다. “너 의료적인 도움이 필요해서 그래? 응급차 불러줄까?” 여전히 무표정하게 나를 쳐다보기 만 한다. 내겐 긴장감이 맴돌고 짜증마저 쌓여간다. 무언가 한마디 더 할 수밖에. ”그럼 뭐가 필요해? 왜 그러는데? “ 그제야 그는 예상 밖의 답을 건넨다. ”내가 무얼 원하는 지 잘 모르겠어.“ 기가 막힌다. 아마도 정신 나간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길게 호흡을 하면서 다시 할 말을 찾아 헤맨다. 마침내 엷은 미소를 머금고 차분하게 말한다. ”어디로 가려고 하니? “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가 더듬거리며 하는 한마디. ”드롭인 센터.“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충동(衝動)에 얼른 버스표 한 장을 건네주며 말한다. ”이 표 갖고 저기 가서 전철을 타. 그리고 시청역에서 내려. 거기서 두 블록 정도 걸어가면 될 거야.“ 그는 떨리는 손으로 버스표를 받아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빙긋이 웃으며 찬찬히 나를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 순간. 그가 슬금슬금 다가서면서 나를 안아주려는 듯 두 팔을 넓게 벌리는 게 아닌가. 나는 엉겁결에 뒤로 몸을 빼고 손짓을 하면서 급하게 말을 쏟아낸다. ”괜찮아……. 아니 됐어.“ 거의 동시에 그의 말 한마디가 내 귀를 울린다. ”I Love You!“ 숨이 탁 막힌다. 반사적으로 나온 나의 초라한 말 한마디. ”신의 은총이 있기를…….“ 그제야 그는 뒤로 물러서서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건넨다. ”당신에게도 신의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의외(意外)로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가 나를 흔든다. 뒤 돌아서서 어기적거리며 걸어가는 그의 어깨 너머로 붉디붉은 저녁노을이 흩어지며 쏟아져 내린다. 그가 길모퉁이를 돌아서 내 시야(視野)에서 사라진 후에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 허공(虛空)속에서 그를 그리며 두리번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허전하다. 그래 나는 아직도 속물(俗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