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會夫妻兒女孫(고회부처아녀손)

 

愚步 김토마스


 

한문은 뜻글자인 한자를 사용하는 문장인데 그 문장을 학습하다 보면 뜻풀이를 하는 재미가 쏠쏠하며, 그 내용을 곰곰이 되새김질 하다보면 정신수양에도 많은 도움을 받게 되는 장점이 있다. 나는 서예를 공부하는 입장이다 보니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자료를 찾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지인으로부터 좋은 자료를 도움 받기도 하지만 주로 인터넷을 활용해서 자료 수집을 하거나 서적을 구입하는 편이며, 차이나타운이나 중고서점을 찾아다니다가 서예 서적들이 나와 있으면 구매하여 활용하기도 한다.

 

어느 날 자료를 살피다가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작품들을 감상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 관심이 가는 문장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高會夫妻兒女孫이 문장의 뜻은 이러하다. “세상살이에서 가장 으뜸가는 모임은 부부, 아들, , 그리고 손주가 모두 모여 함께하는 것이다.” 이 글은 추사선생님이 71세에 쓴 것으로 작품에 기록되어 있다. 추정컨대 귀양살이를 오래하여 심신이 지치고 노쇠한 상태에서 적적한 맘을 달래고자 예전에 온 식구들과 함께한 일들을 회상하면서 쓴 것으로 여겨지는데 결국 화목한 가족(家族)모임의 소중함과 그리움을 담은 문장이라고 여겨진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가 뭐라 해도 부모(父母) 된 자의 입장에서는 자식(子息)들이 늘 걱정거리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를 버릴 수 있어도 부모는 자식을 버리지 못한다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부모들에게 자식들은 늘 보고 싶은 대상인 것 또한 인지상정일 것이다.

 

손수 낳고 기른 자식들이 좋은 배필을 만나 결혼한 후에 귀여운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오고, 식구들이 정성을 다해 풍성하게 차려놓은 음식을 함께 즐기면서 정담을 나누는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는 것은 부모 된 자에게는 큰 기쁨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귀엽게 성장한 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재롱잔치를 하노라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것이 우리네의 행복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런 가족의 단란한 모임보다 더 경사스런 일상사가 우리의 삶속에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런 모임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분가해서 사는 자식들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 하던 것도 해소하고, 별 탈 없이 평안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행여 걱정거리라도 있으면 함께 고민해주고 위로해 주며, 도울 것이 있으면 도와주게 되는 것 또한 부모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젊은 시절을 흘러간 바람처럼 다 보내버리고 벌써 칠순을 저 만치 바라보게 된 입장이 되다보니, 집안의 대소사를 마주 할 때나 가까운 지인들의 사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 볼 때면 내가 살아온 세상살이를 되새김질 하게 되곤 하는데, 이 글귀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참된 기쁨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되물어보게 하는 의미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가족을 중시하는 우리의 정서에 잘 어울리는 문장이며, 너무나도 익숙한 글귀인 家和萬事成(가화만사성)”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해도 정도에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이렇게 평화로운 가족의 모습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한 현실들도 마주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노령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인한 폐해일 것이다. 온 세상이 고령화(高齡化) 사회로 진입하다보니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에 걸리신 부모님을 모시는 문제로 인한 부모와 자녀들 또는 자녀들 간의 갈등 상황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치닫고 있다.

 

어디 이 뿐인가? 요즘 하루가 멀다않고 신문 방송이나 인터넷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독거노인(獨居老人)들의 외로운 삶의 현장을 들여다보게 되는 날에는 가슴이 메어지는 안타까움과 짙은 아픔 그리고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는 인생의 마지막을 홀로 마무리하는 고독사(孤獨死) 소식을 마주 할 때면 인생사의 무기력함과 허무함을 맛보게 되는데 이럴 때 마다 진정한 가족의 가치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에 TV 프로그램에서 애처로운 사연을 접하게 되었다. 한국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 자매가 각각 입양(入養)을 통해서 미국으로 건너가 약 30년을 떨어져 살다가 우연히 D. N. A 검사기관을 통해서 두 사람이 자매란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뉴욕에 있는 NBC 본사의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만나는 장면이 생중계되었고 그 극적인 만남은 전국적으로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그들은 낳아주신 부모님을 백방으로 찾아 나섰으나 안타깝게도 뜻을 이룰 수 없었으며 오직 길러주신 미국 어머니 아버지만 존재할 뿐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가족 사랑을 느낄 겨를도 없이,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고향땅을 떠나 물설고 낯선 곳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꿋꿋이 잘 이겨낸 그 모습이 그저 대견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렇다. 우리들의 삶 속에는 이렇게 생활고에 지치고 힘든 부모들이 가슴을 찢는 아픔을 외면하면서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자라주기를 기대하는 마음 하나로 자식들과 생이별을 고하는 경우도 있다. 혈육의 정을 끊으면서 까지도 오직 자식들이 따뜻하고 편안하게 자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두려움을 거두고 그 길을 선택하는 안타까운 현실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비록 평범하고 가난한 환경일 지라도 인정 넘치는 부모님의 편안한 품과 손길아래서 식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살았다면 큰 행복으로 여기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나도 20대 초반에 갑작스런 선친의 별세로 인하여 일찍이 가장의 위치에 서서 힘겨운 젊은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어머님의 헌신적인 희생과 보살핌 아래서 네 남매가 별 탈 없이 성장하였으며 지금은 모두 각자의 가정을 꾸려서 자식들을 낳아 기르고 평안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 할 따름이다.

 

불현듯이 십 수 년 전에 병환 중에 계시던 어머님을 마지막으로 찾아뵈었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어머니께서 삶을 마무리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시고 우리 형제들을 다 불러 모아놓고 당부하신 말씀이 있다. “내가 가고 없더라도 형제자매(兄弟姊妹) 간에 의리(義理) 있고 우애(友愛) 있게 살아야 한다.” 자식들에게 남겨주신 그 유훈(遺訓) 또한 가족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신 말씀임에 틀림이 없다. 나도 부지런히 정성을 담아 쓴 글을 준비하여 아들부부에게 한 점씩 나누어 주고 가족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것을 당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