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뒷산을 거닐며 지난주 서울에서 카톡으로 전해 받은 친구 정호의 영면 소식이 새삼 떠 올랐다. 대학시절 가까이 지내다가 그 후에는 두 번 정도 만났던 기억이 남아있다. 군 제대 몇 달 후, 미국으로 출국하는 날 김포공항에서 친구들과 함께 사진 찍을 때 만났고, 그 후 6년 만에 서울에 나가서 결혼할 때 부인과 함께 와줘서 만났다. 서로 교차하지 않는 인생을 산 셈이다. 그 친구는 연구원으로 대전에 산다고 들었고, 또 언제는 유럽에 산다고 했고. 항상 잘 있다는 소식이었다. 몇년 전에는 연구실적이 좋아 표창을 받는다는 소식도 들었다. 힘든 가정환경에서 자라서인지, 고등학교 때 이미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독후감을 교지에 썼고, 대학 시절에는 유행하던 Solitary man이란 노래를 입에 달고 다니던 친구다. 담배와 술도 좋아했고.
올해 가을 오랜만에 서울을 방문하러 나가기 전, 정호가 뇌암으로 재작년에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을 못 하고 지금은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전병원에 있다니 서울에서 가볼 수 있는 거리지만, 왠지 그런 상태에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볼 용기가 안 났다. 아니면 그런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결국 그를 못 보고 귀국했다. 봤다면 의식이 없는 그의 귓속에 아마 이렇게 얘기했을 거다. “나야 창희.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낸다는 소식 듣고 좋았지. 대학시절 함께 보낸 시간이 뒤돌아보면 좋았어. Solitary man을 부르며 담배 연기 자욱한 술집에서 인생을 얘기했지. 아직 살아 보지도 못했지만 회의하고 저항하는 것이 멋있어 보였어. 일학년 여름방학 때 남도를 배낭 메고 돌던 기억도 이제는 어슴푸레하네. 어느새 거의 50년 전이니.”
앞서간 이들을 생각하면 그들 모두 맡은 배역을 다 못 마치고 어느 날 갑자기 무대 밖으로 불려간 느낌이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그 자식이 학교를 마치고 사회인으로 역할을 하며 배우자를 만나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그러면 인생의 역할을 다했을까? 아니면 그 어느 배역도 만족할 만한 끝이란 없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역할을 맡고 무대에 설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운 좋은 배역인지도 모르고. 어차피 처음과 끝은 우리 몫이 아니니까.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4개월이나 컴퓨터와 담을 쌓고 살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덕분에 좋은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
투병 중인 친구를 보는 마음이 어떤 건지 저는 잘 알지요.
함께 교회 생활을 했던 친구가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그 눈빛이 생각납니다.
이 주제로 글 한 편 써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