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토요일마다 바쁘다. 손녀가 다닐 사립 중학교를 찾아다닌단다. 말하자면 학교 쇼핑인 셈이다. 벌써 세 군데에 원서를 넣었다는 말에 조언이랍시고 한마디 던졌다. “이왕이면 크리스천 학교로 보내라” 힐끗 나를 돌아본 딸이 픽 웃는다. 내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자기가 찾는 학교는 교육 커리큘럼이 우수하고 학업 성취도가 높아 명문 대학 진학이 유리한 곳이란다.
나는 딸이 평소에 믿음 안에서 아이를 잘 키우는 것 같아 대견했는데 신앙이 학교 선택의 기준이 되지 않아 실망이 되었다. 멍해진 내 표정이 마음에 걸렸는지 딸이 이유를 묻는다. 요즘 세상이 너무 흉흉하지 않니. LGBTQ란 말이 공공연해지고 있지만 크리스천 학교라면 조금은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말에 딸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아이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엄마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한다. 지금 다니는 초등학교도 가톨릭 계통인데 별별 가정이 다 있다고. 싱글 부모 가정, 아빠가 둘인 가정, 엄마가 둘인 가정 등. 이제 그런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란다. 나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TV 뉴스에서나 보던 단어 속에 우리 손자 손녀들이 살고 있다니. 딸이 말했다. “엄마, 아이들한테 동성애니 트렌스젠더니 그런 것 나쁘다고 말 못해. 자기 친구들이 그런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데. 그 아이들하고는 놀지말라고 해야잖아. 어떻게 그래? 애들이 무슨 죄야?” 분명 나름대로 펼칠 논리가 많았는데 목구멍까지 올라오던 말이 나오지도 못하고 삼켜졌다.
몇 해 전만해도 동성애란 단어에 움찔하던 사회가 이제는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성(性)이 남성과 여성, 이성애와 동성애라는 이분법적 개념으로 정의되지 않고, 생물학적인 성, 성정체성, 성적지향, 성적행위 등 다양한 요소가 조합되며 더 복합적인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으니 이 비정상의 끝이 어디까지일까 싶다. 세상이 개성을 존중하고 자아실현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은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그렇지만 그 개성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인 성(性)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다. 어른들은 어디까지가 정상이며 어디까지를 상식이라 가르쳐야하는지 혼란스러울 것 같다. 부모의 윤리나 도덕이 아이가 살아가는 세상의 바른 처세라고 어떻게 강요할 수 있을까. 일런 머스크가 트랜스젠더 이슈에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들 때문이라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아들은 머스크라는 성조차 쓰고 싶지 않다며 부자(父子) 관계를 단절했다. 졸지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린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
세상은 변하고 새 세대는 그 변화를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산다. 어쩌면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새로운 풍조가 아니라 내가 알던 진리가 더 이상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딸의 말처럼 아이들은 죄가 없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을 혼란 속으로 밀어 넣기보다는 그 어떤 시대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참된 가치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현실을 인정은 못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히 안다. 내가 고민하는 동안에도 손녀는 자라고 세상은 계속 변해갈 거라는 사실을.
성민희 수필가는‘수필시대’로 등단했다.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장과 이사장을 역임했다. 한국산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저서로는‘사랑이 고향이다’,‘아직도 뒤척이는 사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