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기교보다 인간의 향기를/주영준
수필을 쓰는 일은 어렵고 힘이 든다. 읽는 사람은 단숨에 쓴 글이라고 쉽게 생각하는 그 짧은 글 한 편을 내놓기 위해서 소재선정에서부터 퇴고를 거쳐 활자화되기까지 그 글에 매달린 집념과 인고는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수필은 ‘어렵게 써서 쉽게 읽히는 글이 성공한 글’이라고도 말하지 않는가.
나는 수필은 쓰면 쓸수록 어려워지는 것만 같다. 수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야말로 붓 가는 대로 쓰던 때는 상상도 못했던 고통이다. 수필을 배우면서 문학성이 있어야 하고 품위가 있고 개성적이면서 보편성이 있어야 한다는 수준 높은 지향을 두고 보니 붓이 나가지를 않는 것이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며칠씩 사색하고 한마디 적절한 어휘를 찾기 위해 밤이 깊도록 고민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도 만족한 글을 쓰지 못하면서 계속 원고지를 앞에 놓고 앉아 있는 것은 그 고통 속에서도 내 생각을 표현하겠다는 집념과 끝났을 때의 성취감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
글을 쓰는 즐거움은 작품 속에 묻혀 그 시공(時空) 속에서 현실을 초월하기도 하고 작품속의 세계에서 까마득한 옛날의 그리운 세월로 돌아갈 수도 있고, 삼라만상과도 마음이 통할 수 있어 사색이 자유롭다는 것 그리고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나눈다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졸작<木刻>속에서
수필은 작가 나름의 빛깔 즉 개성이 뚜렷해야 한다. 그것은 사물을 보는 눈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시각(視覺)의 차이에서 온다. 카메라로 같은 물체를 찍어도 렌즈의 초점을 맞춘 각도에 따라 물체의 모습은 전연 다를 수도 있다. 글에서도 피상적인 시각 뿐 아니라 투시하는 심안(心眼)으로 물체를 통해서 보는 세상이 다르고 그 사람의 사상 철학에 따라 한 물체도 여러 가지로 다르게 표현된다. 이런 뚜렷한 개성이 있다 하여도 그것이 독자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독자를 권태롭게 할 뿐 글을 쓴 의의를 상실한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수원(水源)이 풍부한 샘물처럼 촉촉이 가슴을 적시는 생각이 항상 넘치지만 수원이 빈약한 사람들은 그런 물이 고이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며칠이고 그 생각에만 잠겨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마감 기일 때문에 초조한 나머지 급히 물을 퍼내야 하니 좋은 글 나오기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글을 쓰는 자질 문제도 있지만 작가의 폭넓은 지식과 상상력, 치밀한 관찰력 문장력 등 끊임없이 다방면으로 연마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수필은 흔히 서두가 어렵다고 말들을 한다. 서두는 글의 방향을 유도하고 독자의 관심을 좌우하기 때문에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다. 글을 구상할 때 이미 첫 부분은 정해 놓고 있지만 첫마디를 어떻게 시작 할 것인가가 문제 되는 것이다. 이 첫마디 때문에 글을 시작하지 못하고 고심할 때가 있다. 수필에 대한 강론을 들어보면 ‘서두는 간단명료하게 시작하되 전편에 암시적 기틀이 되게 써라. 느낀 대로 직접 써 나가라’ 고 말하고 또는 ‘읽는 사람의 관심과 흥미를 끌도록 간결하고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로 시작하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글을 시작할 때 방향을 잡는 데는 이런 말들을 잘 새겨볼 일이다.
서두 못지않게 힘이 드는 부분이 끝 부분이다, 이 마지막 결(結)이 앞글의 중량을 결정한다. 영화나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벅찬 감동 긴 여운이 가슴에 남듯이 결미(結尾)가 중요한 것은 감동과 공감이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수필가는 ‘결(結)은 화가가 용을 그려놓고 마지막에 눈(晴)을 찍는 일이다’ 라고 말하면서. ‘은은한 여운과 감동이 담긴 결미(結尾)는 오래도록 가슴과 뇌리에 남는다’고 말한다. 눈이 살아 있어야 생명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글도 마지막 한 줄 그것은 그 글의 총괄이며 상징이고 작자의 결론이다. 농축된 뜻과 사상이 담겨야 하고 산사의 저녁 종소리처럼 은은히 가슴에 고이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끝마무리를 해보고자 글 쓸 때마다 고민에 빠지지만 아직 한번도 그런 글을 써 보지를 못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끝을 마무리하지 못해 책상 서랍에서 잠자고 있는 묵은 원고들이 햇빛 볼 날이 있을지. 그 원고들을 볼 때마다 미리 끝부분이 생각나지 않으면 아예 붓을 들지 않는다던 어느 교수님의 말이 생각나곤 한다.
수필은 퇴고 과정에서 글의 몸매가 형성된다. 군말을 깎고 포인트를 강조하고 자극적인 언어는 온유하게 그리하여 하나의 조각품처럼 다듬어지기까지 수없이 손질을 해야 한다.
글은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한다. 이것은 특히 수필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수필은 직접 자신을 투영한 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필을 공부하려는 사람은 문장수련과 아울러 지식과 교양을 통한 인간 수업에도 힘써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좋은 글 문학성이 높은 글이란 결국 인간적 향기가 짙은 글이 아니겠는가. 지엽적인 아름다운 표현으로 산뜻하게 입맛이나 돋운 글이 어찌 묵향처럼 배어나오는 생의 향기를 담은 글을 당할 것인가. 내밀하고 진실한 목소리는 표현에 아무런 기교가 없어도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모든 면에 허실한 자신이 부끄럽고 안타깝다. 앞으로 더 겸허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정진하면서 읽는 사람의 가슴에 오래 남는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