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구조화와 문학성/안성수

 

 

 

 

  한국의 현대수필에서 발견되는 작법상의 문제는 이야기의 미적 구성이나 구조(structure)에 대한 무관심이다. 문학작품에서 구조란 전체성 속에서 유기적으로 작동되는 구성요소 상호간의 관련방식이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작가가 꿈꾸는 주제와 의미세계를 감동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구성요소들의 유기적이고 심미적인 배열방식이다. 이러한 텍스트의 문학적 의미와 울림은 그 구조에 의해 조절되고 탄생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런 데도, 한국의 많은 수필작가들은 이야기를 천편일률적인 소재발생 순서로 배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결과, 이야기 줄거리만 무성하고 독자를 공감의 세계로 이끄는 문학적 울림이 빈약한 작품을 낳는다. 이야기의 구조화 원리 중에는 소재의 발생순서로 단순 배열하는 방식과 시간착오를 이용하여 입체적으로 변형 배열하는 방식이 존재한다. 전자가 소재로서의 이야기인 스토리(story)에 불과하다면, 후자는 그 스토리를 미적으로 변형시킨 플롯(plot)에 해당된다.

 

 

  적어도, 문학성이나 예술성을 전제로 한 문학적 이야기는 단순한 스토리에 작가의 창작의도와 미학성을 가미하여 변형시킨 플롯의 형태가 되어야 한다. 다만, 수필은 스토리가 실제의 세계에서 가져온 자기 체험이라는 점에서 그 내용을 바꿀 수는 없으나, 그것을 배열하여 구조화하는 방식에는 다양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특히, 수필 이야기는 그 길이가 짧기 때문에 제한된 분량 속에서 철학성과 미학성을 효과적으로 증진시킬 수 있는 미적 배열방식이 필요하다.

 

 

  문학작품 속에서 소재의 이야기 순서를 변형시키거나 재조직하는 것은 작가의 고유한 특권이다. 그러한 미적 변형의 권리를 창의적으로 활용한 작가들만이 세계명작을 창조한 이야기의 달인들로서 문학사에 기록된다. 단순한 내용을 구조적으로 변형시켜 재배열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수사 전략을 발휘할 경우, 이야기의 주제와 미적 감동의 생성체계가 바뀌면서 예술적 울림의 질과 양을 변화시킨 예는 허다하다. 이야기의 구조화 전략은 느슨한 이야기 흐름을 역동적으로 바꾸어 주고, 이야기의 밀도를 높임으로써 울림의 질을 강화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처럼, 수필의 제재는 작가의 역량과 창의적 구조화 전략에 의해 다양한 이야기로 변신할 수 있다. 헨리 제임스가 소설에는 백만 개의 창이 있다고 주장했을 때, 그 진의 속에는 이런 미적 구조화의 변형 전략이 숨어있다. 작가가 선택한 제재들을 배열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을 수 있고, 그 배열방식에 따라 다양한 구조와 문학적 의미가 생성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미적 구조의 변형방법은 문학성과 철학성을 심화 증진시키는 창조의 핵심원리라는 측면에서도 작가들의 중요한 탐구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수필가들은 이야기의 미적 구조에 대한 깨달음과 탐구 욕구가 낮은 편이다. 이런 현상은 작법에 대한 안이한 생각이나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수필을 아직도 20세기 식의 담론인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나, ‘무형식의 형식’ 등과 같은 추상적 관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결과로도 보인다. 수필처럼 짧은 산문에서 그런 전략적인 이야기의 구조화와 울림의 미학을 의도하지 않는다면, 어찌 시와 소설의 역동적인 이야기에 사로잡혀 있는 독자들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불행하게도, 이런 빤한 이치를 깨닫지 못한 작가들은 운 좋게 발견되는 글감에만 의존하는 소재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타 장르의 종사자들이 “수필도 문학인가?”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는 비 본격 문학”이라는 조롱에 미학적으로 맞설 수 있는 반박의 논리를 찾지 못한다. 수필의 글감에 허구성을 가미하려는 전위적인 노력보다는 그 내용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도 다양한 구조의 이야기로 변신시킬 수 있는 미적 구조화의 논리를 찾아낼 때, 수필은 더욱 웅혼한 미학성과 철학성의 세계를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텍스트의 구조는 문학적 의미를 창조하는 핵심 원리일 뿐만 아니라, 문학적 울림을 생성하는 방법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수필작가는 이야기의 미적 구조화 과정에서 문학성, 혹은 예술성을 유기적으로 증진시킬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문학을 문학이게 하는 요소로서의 문학성(literariness)이란 문학적 감동을 생성하는 원리나 힘을 총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문학성이 이야기의 구조 속에서 미적 울림을 극대화하는 원리로 생성된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