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을 들어서자 누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나를 보고 그러나?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나다. 

다시 얼굴을 들여다보며 가까이 다가간다. 

나야, 나. 그녀는 자기 가슴을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기억을 해보라고 다그친다. 

앞에는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옆에는 순하게 나이드신 할머니가 함께 미소를 짓고 있다. 

아, 두 노인을 보니 알겠다. 

마구 호령을 해대던 친구의 시아버지와 어깨를 늘어뜨리고 순종만 하시던 시어머니다.

20년도 더 지나간 옛날 골프채를 휘두르며 함께 히히덕거리며 쏘다녔던  그녀. 

먼데로 이사를 간 후 몇 년간은 소식이 오더니 뚝 끊어졌던 그녀.

새까맣게 윤기나던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회색이 지나가는 눈밭이 되었다. 

곱던 피부는 두껍고 탁하고 주름 잡힌 낯선 꺼풀이 한겹 입혀지고 맑게 초롱대던 눈은 둥글둥글 원을 그리는 안경이 막고있다.  

어머나, 어머나. 호들갑과 입을 막은 손가락 사이로  웃음이 한바탕 터져나온 뒤

서로의 안부도 왔다갔다 한다. 

아이들은 모두 출가시키고 손주도 여럿이고... 막바지에 할아버지를 가리킨다. 

"치매가 왔어. 직장암도 왔고."

그는 반찬투정과 잔소리로 가족을 괴롭히던 사람이었다. 

한 푼 두 푼 인색한 생활비를 내어 놓을 때마다 생색을 내고 꼬장을 부려

한숨을 달고 살던 시어머니는 스트레스성 갑상선 수술까지 하셨다. 

음식을 다 드셨는지 양손을 얌전히 무릎 위에 얹어놓고 계신다. 

할머니가 얼굴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다 잡수셨어요?" "네에"

"이제 집으로 갈까요?" "네에"

너무나 얌전하고 순하고 착한 아이로 변하셨다. 

표정도 부드럽기 그지없다.

세 사람이 식당 문을 밀고 나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뭔가 모를 느낌의 슬픔이 찌르르 올라온다. 


파도는 억겁의 세월을 흘려보내어도 여전히 싱싱하고 푸르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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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해운대의 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