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타클로스 이야기
크리스마스면 생각나는 것이 선물이다.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고. 하지만 선물은 산타클로스한테 받는 것이 역시 크리스마스답다. 산타클로스 하면 몇 년 전 테네시주에서 있었던 일 떠오른다.
적당히 배가 나온 하얀 피부의 팔십이 넘은 미첼은 매해 십이월이 되면 산타클로스로 분한다. 특히 흰 머리에 걸맞은 하얗고 긴 멋진 수염에서 나오는 미소는 보는 이까지 같이 미소 짓게 만든다. 아마 평상복을 입은 체 거리를 걸었어도 사람들은 코카콜라에서 선전용으로 만든 빨간 털옷을 입은 산타클로스를 연상했을 것이다.
십이월이긴 하지만 달력을 넘긴 지 며칠이 안 된 어느 날, 미첼에게 급히 산타클로스 역을 해달라는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아는 간호사였다. 간호사들은 가끔 미첼에게 산타클로스 역을 해달라는 전화를 하곤 했다. 이 간호사는 산타클로스를 보고 싶어 하는 매우 아픈 다섯 살짜리 소년이 있다고 했다. 미첼은 집에서 산타 옷으로 갈아입고 천천히 준비하고 가겠다고 했지만, 간호사는 울먹이며 이 아이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며 산타 멜빵만으로도 충분할 거라 했다. 절박해 보였다. 빨간 산타 멜빵은 그가 항상 하고 다니기에 미첼은 황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 앞에서 서성이며 기다리는 젊은 엄마를 만났다. 초췌한 얼굴의 엄마는 미첼에게 아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선물이라며 예쁘게 포장한 작은 상자를 건넸다. 미첼은 선물을 뒤로 감추고 병실 문을 열었다. 작은 남자아이가 핼쑥한 얼굴로 눈을 감은 채 누워있고 할머니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침울한 얼굴로 침대 주위에서 아이와 미첼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심각한 상황을 눈치챈 미첼은 작은 소리로 “만약 우는 사람이 있으면 아이가 눈치챌 것이니 다 나가 주세요.”라고 했다. 마지못해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갔다.
미첼은 아무 말 없이 자는 작은 소년을 바라봤다. 또래의 아이보다 작아 보이는 아이는 침대에 누워있었고 이미 깨어날 수 없는 잠을 잘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다. 유약해 보였다. 잠시 후 아이가 깨어서 미첼을 쳐다봤다.
“다들 어디 갔어요?”
미첼은 돌아서서 병실 창문을 통해 울고 있는 사람을 봤다. 몇 사람이 창문을 통해 미첼과 아이를 울먹이며 바라보았다. 그는 아이의 침대 곁에 앉았다.
“밖에 있단다. 그리고, 내가 누군지 알지? 난 산타클로스야. 네가 크리스마스를 놓칠 것 같다고 해서 일찍 왔단다. 나는 아무도 크리스마스를 미스하지두지 않는단다.”
미첼은 살짝 윙크했다. 아이의 얼굴이 환히 빛났다. 산타클로스를 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살포시 미소까지 지었다.
“산타클로스. 정말이에요?”
“그럼. 난 너에 대해서 다 알고 있어. 넌 나의 넘버원 엘프야. 엘프가 뭔지 알지. 나의 도우미야.”
“내가?” 아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럼. 자. 여기 선물도 있고.”
아이는 선물을 받아 들고 얼굴을 미첼에게로 향했다. 생기가 없어 보이는 얼굴이지만 이 순간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아이는 간신히 포장지를 열었다. 그 안에 있는 장난감 차를 보며 아이가 밝게 웃었다. 장난감 차를 꼭 쥔 아이가 물었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내가 곧 죽는데요. 그런데, 내가 죽었는지 난 어떻게 알 수 있지요?”
미첼이 대답하기에는 너무나 큰 질문이었다. 긴 한숨을 쉬며 미첼이 천천히 대답했다.
“네가 거기에 도착하면 사람들한테 산타클로스의 넘버원 엘프가 왔다고 하면 돼. 그러면 그 사람들이 너를 들여보내 줄 거야.”
“산타클로스의 넘버원 엘프라고 하면은요?”
“그럼. 물론이지.”
미첼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신이 난 아이는 팔을 벌려서 그를 안았다. 미첼도 아이를 살짝 들어서 안았다. 가벼웠다. 아이가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요, 나를 도와줄 수 있어요?”
미처 대답하기 전에 미첼은 아이의 영혼이 사뿐히 떠나는 것을 느꼈다. “정말, 나를 도와줄 수 있어요?” 는 아이의 마지막 말이었다. 고개를 숙인 체 미첼은 아이를 꼭 잡았다. 마치 떠나간 아이의 영혼이 다시 돌아올 것처럼.
그 순간 창문을 통해 보고 있던 아이의 엄마가 울부짖으면서 병실 문을 열고 황급히 들어왔다. 미첼은 아직도 따뜻한 아이를 엄마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의 기나긴 울음이 시작되었다. 가족들이 들어오자 미첼은 살며시 자리를 떠서 병실 복도로 향했다. 부산히 간호사들과 의사가 병실로 향했다.
목이 메고 눈물이 나서 미첼은 병원의 벽을 잡은 체 간신히 서 있었다. 젊어서 군인이었던 미첼은 전쟁에 참여해 많은 경험을 하고 적잖은 죽음을 보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좀 달랐다.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하고 집으로 왔는지 몰랐다. 미첼은 평생을 같이 살아온 아내에게도 차마 이 이야기를 못 했다. 그 후로 한동안 바깥출입을 삼가고 지냈다.
올 크리스마스도 미첼은 빨간 산타 옷을 입고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선물도 나눠주기 위해 길을 나선다. 누구도 크리스마스를 미스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