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동안 잘했어

이리나

 

 

별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의 CD도 여러 개 있고, 콘서트도 간 적이 있기에. 특히 지난 콘서트에서는 그가 쓴 책, ‘나는 박종호입니다.’와 시리즈로 만든 CD도 또 샀다. 책은 읽었지만, CD는 고스란히 뜯지도 않은 채 한쪽 구석에서 먼지를 쌓고 있다. 수요예배 시간에 간증 콘서트를 한다기에 약간은 식상한 마음으로 갔다. 목사님의 소개가 끝나자 어떤 남자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하얗게 센 머리의 자그마한 남자가 무대에 서 있다. 콘서트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게스트 가수인 줄 알고 손뼉을 쳤다. “안녕하십니까. 박종호입니다라고 하며 꾸벅 인사를 했다. 당황해서 무대가 뚫어지라 그를 쳐다봤다. 기억하는 그 얼굴, 그 모습이 아니었다.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었는지, 장내에 작은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아직도 나 맞아요.” 하고 예의 그 만의 몸 돌리는 춤을 췄다. 눈에 익숙한 댄싱 동작을 보는 순간 그 임을 알았다. 이럴 수가. 연이어 몸무게가 반으로 줄어 이제는 미디움 사이즈가 맞는다는, 암에 걸리면 살이 빠진다는 어두운 조크를 했다. 키도 전보다 더 작아 보였다.

 

 

살아서 다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란다. 의사의 사형선고를 들었을 때 하나님이 살려 주실 것을 안 믿었다며 오히려 기도가 안 나오죠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점점 암세포가 몸에 번져 뼈와 살이 차가워지자, ‘하나님, 살려주세요.’라고만 했단다. 뼈가 녹는 것 같은 눈물이 흐를 때 밥솥에서 나오는 김 같은 기도의 작은 점, 그 수많은 까만 점들이 달려옴을 보고 감사한 마음에 그저 눈물만 흘리고, ‘여러분에게 빚진 사람입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며 기어코 눈물을 보였다. 내가 어렵고 힘들었을 때 부르던 찬송은 거의 그의 것이었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빚을 지웠을까.

 

 

그에게 암이 있다는 소식은 들었다. 간 경화로 간이 다 죽었고 그 안에 또 여러 개의 암이 자라고 있는 상태였는지는 몰랐다. 의사 말이 사실인가 하고 간을 빼서 보고 싶었다는 그의 두서없는 넋두리가 가슴에 와 닿았다.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다. 서울 대학교 수석으로 입학해서 올 A를 맞고 수석으로 졸업한, 그의 찬양이 불리지 않는 나라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정작 수술할 돈이 없었다는 말에 여기저기 도와주고 과연 집으로 가져간 돈은 얼마나 됐을까 싶었다. 마치 돌무덤에 죽은 상태로 있던 나사로와 같았다는 그는 항암 치료는커녕 거의 죽은 자신의 간은 다 잘라버리고 딸의 간을 이식 받아야 했다. 딸 잡아먹은 사람이라며 말끝을 못 맺는다. 이렇게 아팠을 때 그저 잠잠히 그분이 하실 일만 지켜봤다고 했다. 직선적인 사람이라 들었는데. 가슴이 찡했다.

 

 

간이식 수술을 받은 지 고작 일 년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간증 찬양 콘서트를 다녀도 될까 하고 내가 다 걱정이 되었다. 예전에 본 그의 콘서트는 잘 만든 스테이크를 먹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잘 익은 열무김치에 된장국을 먹는 느낌이다. 겸손이 슬슬 배어 나오는 웃음을 띠며 이런 식의 은혜는 받지 마세요.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이런 은혜는 받지 마세요.’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는 시련이 아니고 내 잘못으로 받는 고통입니다.’라며 끝까지 그분을 껴안는다. 이 사람, 살아있어 줘서 정말 고맙다. ‘예수님 만날 때, 저는 꼭 이 말 한마디 듣고 싶습니다. 너 그동안 잘했어.’ 이 말 나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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