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교회
그 도시에 갈 때마다 출석하는 교회가 있다. 목사님 혼자서, 삼십여 년 전에 콜링 받은 후, 전도사도 없이 가족들과 함께 운영하는 작은 교회다. 끊임없는 재정난에 허덕여서 그동안 수십 번도 넘게 장소를 옮겼다. 이번에는 변두리에 있는 상가건물로 옮겼다. 교회 앞에 주차장이 넉넉하게 있어 파킹하기는 수월했다.
교회를 개척한 이후로 목사님은 한 번도 예배 인도를 거른 적이 없다. 사모님은 건반을, 대학생인 큰딸은 드럼을, 고등학생인 작은딸은 기타를 치고, 목사님은 찬양 인도를 하신다. 작은 규모지만 성가대도 있다. 예닐곱 명이 소프라노와 알토 파트를 맡고 목사님 혼자서 테너 파트를 부른다. 높은음은 두리뭉실 넘어가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한 티가 역력하다.
여자 성도가 대부분인 교회의 평균 연령은 육십 중반이고 칠십 세가 되지 않았으면 젊은 축에 든다. 제일 나이가 드신 권사님은 구십 세가 훨씬 넘었다. 교회 주보의 글자 크기는 여태껏 내가 보아온 어떤 주보보다 커서 읽기가 쉽다. 의자도 가벼운 접이식 의자라서 어디서든지 사용할 수 있다. 이사가 잦은 교회에 꼭 필요한 물품이다. 그리 넓은 장소는 아니지만, 목사님은 꼭 마이크를 사용한다. 목사님의 목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귀가 어두우신 분들을 위한 목사님의 작은 배려다.
이 교회는 특이하게 새로 들어오는 신자와 세상을 떠나는 신자의 수가 거의 비슷해서 교회 부흥이 잘되지 않는다. 그러나 꾸준히 새 신자가 들어오며, 매년 서너 명이 세례를 받는다. 이 시대가 고령화 사회가 되어 간다고 하지만, 이 교회만큼 고령화 사회를 대표하는 곳이 또 있을까. 듣기론 목사님은 결혼 주례보다는 장례 예배를 더 많이 했다.
예배가 끝나고, 광고가 시작될 때까지 잠시 시간이 흘렀다. 뒤에서 ‘아침 공양은 했냐?’라는 질문에 ‘아직’이라는 말이 들렸다. 불교에서는 밥 먹는 것을 공양(供養)이라 부른다. 이 교회에는 예전에 절에 다니던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겐 주일마다 교회에 나오는 것도, 교회 예배 의식도 익숙하지 않지만, 웬만한 것은 이해하고 넘어간다. 나이 듦의 여유랄까. 이곳에 와서 보살이란 칭호 대신 자매, 성도, 집사 또는 권사라고 부르며 사귄 친구도 많다.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깔깔대는 십 대도 아닌데,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테가 굵은 안경을 쓴 목사님의 광고가 시작됐다.
“이번 주부터 교회에서 매주 수요일 아침 열 시에 성경 공부를 하겠습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꼭 오십시오. 라이드가 필요하신 분은 저에게 연락 주시면, 제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간단한 다과를 준비하고 있겠으니 늦게라도 꼭 오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오실 때까지 저는 예수님과 둘이서 공부하고 있겠습니다.”
목사님의 광고가 끝나자 장내가 술렁댔다. 교회 재정이 목사 사례비도 제때 지급하지 못할 정도가 되자, 목사님은 우버 드라이버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하신다. 교회 성도 대부분이 고령이라 운전하는 것이 여의치 않자, 목사님 차는 무료로 운영하는 택시가 된 지 오래다.
“목사님은 누구와 둘이서 공부하겠다는 거야. 단둘이서 공부하겠다는데, 오면 방해하는 것 아냐? 꼭 와야 하나?”
“글쎄. 나도 누구라고 이름은 들었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누군지. 생각이 안 나네.”
이 교회에는 모태신앙을 비롯해 평생을 다닌 사람부터 시작해서 육십, 칠십이 넘어서 처음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 뒤에 앉은 두 분에게는 이 교회가 팔십 평생을 살면서 첫발을 내디딘 곳이다. 그 나이에 종교를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다.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이들에겐 예수, 이 아름다운 이름이 여전히 낯설다. ‘그럼 오지 말까?’라는 소리에 잠잠히 듣고 있던 내가 뒤를 보며 말했다.
“할머니, 늦게라도 오세요. 오실 때까지 목사님이 혼자 성경 공부하면서 기다리신다는 거예요.“
“그래. 그러면 와야지. 목사님 혼자 두면 안 되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하나님이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만 임하시고 축복하고 그 모임을 인정하신다는 말씀은 아니렷다. 나는 믿는다. 무소 부재한 그분이 혼자 있는 곳에도 함께 하심을.
참 목사님과 신도들이 순수하고 아름답고 신실한 교회라고 생각되요. 응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수가 다는 아니니까요.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