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만의 사랑

이리나

어느 일요일,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오랜만에 코리아 타운에 갔다. 일요일 저녁이라 식사하는 곳은 상당히 붐볐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혹은 친구끼리 나온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식구 넷이 앉아서 식사할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한쪽 구석에 있는 테이블을 찾았다. 지하에 위치해서 그런지 사람들 말소리, 의자 부딪치는 소리, 걷는 소리, 주문한 음식 나왔다는 소리가 여기저기로 튕겨서 귓가에 윙윙댔다. 아이들은 밥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고, 겨우 팔 하나 뻗을 곳에 있는 옆 테이블에서도 큰 소리로 떠들며 대화를 하느라 난 정신이 없었다. 우연히 맞은편에 앉은 테이블로 시선이 갔다.

고운 핑크색 스웨터를 입은 짧은 파마머리를 곱게 빗은 할머니가 앉아있고 그 앞에는 아들로 보이는 오십 대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먹다 남은 설렁탕 두 그릇과 냉면 그릇 하나가 앞에 놓였다.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인지 두 사람은 소곤소곤 말했다. 잘 들리지는 않지만 아마 누가 그 장바구니를 들고 갈 것인가를 상의하는 것 같았다. 장바구니로 시선을 돌렸다. 마켓에서 공짜로 나눠준 장바구니에는 파 몇 단이 삐죽이 나왔다. 그리 커 보이진 않지만, 할머니 혼자 들고 가기엔 벅차 보였다. 거친 소리가 들리더니 더부룩한 머리의 아들이 벌떡 일어나서 출입구로 향했다. 심한 소아마비였다. 안짱걸음으로 걷고 두 팔은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앞뒤로 마구 흔들렸다. 그제야 왜 엄마가 아들한테 장바구니를 안 맡겼는지 알았다. 혼자 걷기도 힘든 사람인데. 장바구니는 너무 커 보였다.

이젠 저녁 식사보다 이 장면에 더 신경이 쓰였다. 호기심에 아들이 어디로 가는지 끝까지 지켜보았다. 아이들이 밥을 다 먹었는지는 이제 나의 관심 밖이었다. 푸드 코트를 빠져나간 아들은 출입구 밖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뻣뻣이 들고서. 아마 아직도 화가 안 풀린 모양이었다. 나의 관심은 이제 할머니에게 향했다. 할머니가 어떻게 할 것인가. 벌떡 일어나서 장바구니를 들고 아들에게 갈 것인가에 온통 쏠렸다.

심란한 얼굴의 할머니가 손을 올렸다. 아마 살짝 이마를 스친 앞머리를 옆으로 쓸려 올리려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할머니의 팔은 위로 향하지 못했다. 몇 번 위로 뻗친 팔이 머리를 만졌으나 앞머리는 아직도 이마에 그대로 있다. 그러면 누가 저리 얌전히 머리를 빗겨 주었을까. 아들이겠구나 싶었다. 그제야 할머니 옆에 있는 워커가 보였다. 낡은 옅은 회색의 워커는 앞에 물건을 담을 장소가 없다. 보건소에서 무료로 나눠 준 것 같았다. 일어서서 저 워커를 한 걸음, 한 걸음씩 밀어야 앞으로 걷겠는데. 그러면 장바구니는 어떻게 들고 가나 이제 내가 걱정됐다. 아마 누가 장바구니를 들고 와서 함께 식사하고 먼저 간 것 같은데. 갑자기 그 사람이 원망스러워졌다. 나라도 나서서 도와줘야 하는지. 이럴 때는 오지랖 넓은 사람이 부럽다.

할머니는 한숨 쉬며 스웨터 옷매무시를 만지고 또 만지며 앉아있고 아들은 차마 떠나지 못하고 문밖에서 반대쪽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이들에게 사랑은 이렇게 찾아왔다. 엄마와 아들로 만나 하는 사랑. 제 나름대로 사랑하는 두 사람. 소아마비로 혼자 걷기도 힘든 아들을 생각해서 직접 장바구니를 들고 가겠다는 엄마와 워커 없이는 걷기도 힘들고 팔에 힘도 없는 엄마를 생각해서 장바구니를 들고 가겠다는 아들. 아! 난 보았다. 이렇게 어수선하고 분주한 사람들 속에서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두 사람을 보았다. 이들은 이렇게 사랑을 한다. 부럽다. 저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줄 물을 스티로폼 컵에 따르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