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앉은뱅이 상을 보며

이리나

 

 

계절로 치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였고 스무 살에서 몇 번의 봄이 지난 시절이었다. 고래 한 마리 정도는 너끈히 잡을 것 같았던 그때, 만만해 보인 인생 위에 설계된 나의 완벽한 계획에는 실패란 없었다. 하지만, 한 번의 잘못된 결정이 내린 파급효과는 예상외로 컸다. 어느 날부터 삶이 계획에서 어긋난다는 걸 알고, 방향을 바꾸려 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허탈했다. 앞으로 살아갈 새털처럼 많은 나날은 오히려 저주처럼 느껴졌다.

 

이때를 같이 보낸 친구가 있다. 룸메이트였던 S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편이 시리다. 엘에이 한인 타운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은 하찮은 일에 상처받고 축 처져 있는 내게, “왜 그래.”라고 묻기에 요즘 사는 것이 버겁다고 하자, 대뜸 자기는 가시나무로 이리저리 후리게 맞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언제나 주어진 환경에 당당하게 맞서서 사는 그녀였다.

 

어느 여름날, 일도 가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몸살이었다. 눈을 떠보니 해는 저문 지 오래였고, 7시면 퇴근해 들어오는 S도 아직 안 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아파트가 무섭고 배가 고팠지만,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아파트 문 여는 딸깍 소리에 눈을 떴다. S였다. 조심히 방문을 열며 아프냐 묻길래, 고개만 끄떡였다. 이까짓 몸살이 뭔 대수라고 되뇌며, 불 꺼진 방에서 혼자 훌쩍였다. 곧 부엌에서 저녁밥 짓는 달그락 소리가 들렸다. 한참 후, 나지막하게 나와서 밥 먹어라는 소리를 들었다.

 

느릿느릿 침대에서 기어 나와 앉은뱅이 상 앞에 앉았다. 금방 지은 밥 냄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인사 대신 옆에서 서성이는 친구를 건성으로 보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일이 늦게 끝나서 지금 들어왔다는 이야기까지 들었고 그다음부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왠지 모를 설움에 꾹꾹 눌렀는데도 굵은 눈물방울이 뜨거운 김칫국에 떨어졌다. 때로는 울음을 참는 것이 우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 밥 한 공기를 순식간에 비웠다. 온종일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위는 그제야 만족했는지 포만감이 몰려왔다.

 

궁둥이를 바닥에 제대로 붙이고 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친구 대신 낮은 앉은뱅이 상 위에 얌전히 놓여있는 다 식은 S의 밥과 국만 보였다. 야근하고 와서 배가 고플 텐데. 미안한 마음에 S의 방문을 두드리고, 나와서 밥 먹으라고 했지만, 끝내 말을 다 잇지는 못했다.

 

방으로 들어가니 열 한시가 넘었다. 다시 국 데우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렸다. 나가서 고맙다고 맛있게 먹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퉁퉁 부은 눈으로 대하기가 민망했다. 우두커니 침대 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런 날 비라도 처량히 내려주길 바랐지만, 창밖의 네온사인 위로 오히려 별만 환히 보였다.

 

인생은 사건이 아니라 해석 중심이라는 말대로 좋지 않은 일도 나름대로 해석해가며 흘러가게 두었다. 다른 사람의 재능을 인정하기 시작하자, 소소한 곳에 숨어있는 행복이 보였다. 그래도 순자의 성악설이 피부에 와닿는 날은 우린 앉은뱅이 상 앞에 앉아 공평하지 않은 삶을, 불완전한 세상을, 카르마(karma, 업보)가 어떻게 그 사람에게 임할까를 두 번째 커피가 식을 때까지 토론했다. 우리의 이십 대는 이렇게 흘러갔다.

 

지금 집에 있는 가구와는 어울리지 않아 그동안 구석에 세워 놓았던 상을 꺼냈다. 할인 매장에서 에누리해 판매할 때 산, 모서리 부분의 테는 낡아서 부서지기 시작한 싸구려 플라스틱 상을 조심히 닦았다. 그동안 몇 번씩 처분하려고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지만, 함부로 버리거나, 기부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대하는 상위에 찻잔을 놓고 앉아서 창밖의 나무 위로 뜬 희끄무레한 별을 본다.

 

전도서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했다. 살다가 풀썩 주저앉고 싶을 때 우린 만났으니, 서로의 삶이 순탄해지면 다시 만날 것이다. 이젠 그 시절도 초여름 햇살 같은 아름다운 날로 여겨지지만, 아직도 친구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저리다. 오늘따라 유난히 S가 생각나는 걸 보니, 아마 어디선가 내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평안하게 살기를 기도한다. 오늘 밤은 유난히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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