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유감

 

동네 도서관에는 이곳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기부한 한국 책들이 제법 있다. 혹시 글 쓰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내심 기대가 컸다. 일본 책, 중국 책이 빼곡히 꽂혀있는 선반에서 낯익은 한글이 눈에 띄었다. 한국말을 모르는 사람이 꽂아놓았는지, 어떤 책은 거꾸로 꽂혀있다.

 

지금은 절판된 김형석의 <때로는 마음이 아플지라도>를 비롯한 네 권의 책을 샀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제목부터가 마음에 들어서 얼른 집어 들었다. 반양장 지에 실려있는 삽화도 흥미로웠다.

 

중년의 백인 직원이 이 책은 양장본 가격인 75전이라 했다. 바로 내 앞에서 책을 산 노년의 백인 여성은 반양장 책을 25전에 샀는데. 이유를 묻자 이 책은 좀 두꺼워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원인 모를 억울함에 그의 얼굴을 쳐다보니 속마음에 뭔가 켕기는지 딴청을 하고 있다. 쿼터 하나로 직원과 입씨름하기 싫어서 냉소를 띠며 1불을 주면서 25전은 도서관에 내는 도네이션이라 했다. 그가 놀라면서 고맙다고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단숨에 읽었다. 정말 나의 영혼까지 따뜻해져 갔다. 서서히 도서관에서의 불쾌했던 일이 잊혔다. 많은 문학상을 받은 책답게 잔잔하지만 큰 감동을 주었다.

 

<작은 나무>인 작자가 인디언 할머니 할아버지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을 적은 자서전적 글이라는데 더 놀라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쓰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포레스트 카터를 찾아봤다.

 

포레스트 카터는 필명으로 작가 소개란에 의하면 원래 이름은 아사 커터’, 혹은 에이스 카터이고 미국 앨라배마주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체로키 인디언의 혈통임에 자긍심이 있다고 쓰여 있었는데 이 기록은 사실이 아니다.

 

포레스트라는 필명은 남부군 기갑부대 장군이며 Ku Klux Klan (KKK) 단의 창시자인 나다니엘 베드퍼드 포레스트에서 따왔다. KKK단은 남북전쟁 후에 생겨난 인종차별주의적 극우조직이다. 뉴욕 타임스에 의하면 양부모가 다 백인인 카터는 열렬한 백인 우월주의자였으며 테러 단체 KKK단의 리더로 흑인들을 린치하며 폭동을 일으킨 주범이었다.

 

충격이었다. 몇 번씩 정독하며 애정을 가지고 읽은 책이었다. 잘 자라기를 바라며 그토록 기도하면서 읽었던 나의 <작은 나무>가 활활 타버렸다. 불이 꺼지고 난 재 위에 분노만 일었다. 허탈했다.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한 작은 나무가 하늘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며 오늘도 분리, 내일도 분리, 영원한 분리를 외치는 사람들에 의해 가지가 부러지고 뿌리째 뽑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끔찍했다.

 

카터는 본인의 과거를 숨기기 위해 아들을 조카 취급했으며, 아들과 싸운 후, 그 상처의 후유증으로 죽었다. 처음 묘비명은 포레스트 카터였다. 그 사실을 안 가족이 아사 얼 카터라고 바꿨다. 노년에 자신은 아사 카터가 아니라며 부인하고 살았지만, 길 가던 흑인 남자를 잡아서 차 트렁크에 넣고 다니다가 기름 뿌려 산채로 불에 태웠다고 알려진 사람이다.

 

이 책은 자서전이 아닌 소설이다. 논픽션이 아닌 픽션이라고 생각하면 이 책은 훌륭한 책이다. 사실 책이 주는 메시지와 그 책을 쓴 작가의 삶을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이 책은 많은 감동을 주는 좋은 책이고 독자는 작가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뒷맛이 쓰다.

 

 

글이 곧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의 글은 나를 대표한다. 삼류작가도 못 되는 나 또한 내가 쓴 글에 맞게 살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철저히 속이는 이 작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앞으로 곧게 살아야 할 이유가 또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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