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 울타리 / 김기택

 

개나리 가지들이 하늘에다 낙서하고 있다

심심해 미쳐버릴 것 같은 아이의 스케치북처럼

찢어지도록 거칠게 선을 그어

낙서로 구름 위에 깽판을 치고 있다.

하늘이 지저분해지도록

늦겨울 흑백 풍경을 박박 그어 지우고 있다.

작년 봄에 전지가위가 가지런히 잘라줬는데

잘린 자리가 엉킨 전깃줄처럼 또 헝클어져 있다.

시린 바람에 날아가던 검은 비닐봉지가

낙서에 걸려 종일 파닥거리고 있다.

낙엽이 담배꽁초, 종이컵, 과자봉지를 몰고 다니다

낙서 밑으로 모여 바스락거린다.

쓰레기를 지우려다 낙서가 더 칙칙해지고 있다.

진달래 꽃망울을 지나가던 바람

목련 꽃봉오리를 터뜨리던 희디흰 향기가

낙서를 피해 가려다 걸려

녹슨 철조망 같은 얼기설기 가지 위에다

노랑노랑 꽃망울을 틔우고 있다.

신경질 나게 휘갈긴 선들마다

빛구멍 뚫린 하늘을 화들짝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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