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피는 산을 오르며 / 안태현

 

 

오후의 햇살을 비벼

슬쩍 색깔을 풀어놓는 꽃나무들로

온몸이 푸르고 붉어진다

봄꽃이 피는 산

삶의 자투리가 다 보이도록

유연하고 느리게

산의 허리를 휘감아 오르며

나는 한 마리 살가운 꽃뱀 같다

오랫동안 몸 안에 담아 두었던 어둠 벗어버리고

바람이 뽑아낸 연둣빛 새순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푸른 하늘이 내다보이는 산마루까지

달맞이 같은 추억을 끌고 오른다

고즈넉한 이 꽃길에

모두들 마음이 순해진 건지

작대기를 휘두르거나 돌을 던지는 사람이 없다

길을 내주고 기다려준다

꽃뱀 한 마리

겁도 없이

봄꽃 피는 산을 홀로 차지하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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