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외출 / 윤혜주

 

 

그날, 시월 열사흘의 달은 청송으로 곧장 돌아가지 않았다. 일등성별의 반 이상이 얼굴을 내민 눈부신 푸른 밤을 호미곶에서 보냈다. 소슬바람이 선명한 붉은 잎가지를 흔드는 가로수 길에 눈길 주다, 또랑또랑한 풀벌레 마지막 울음에 귀 기울이다가, 다글다글 파도에 쓸려가는 몽돌의 자지러짐과 청잣비치 시거리에 다정한 미소 건네며 밤새 노닐었던 모양이다. 희붐한 새벽녘이 되어서야 내 창문을 비추며 돌아가는 길을 물었다.

​도망치듯 나선 길이었다. 때론 지진 뒤의 피할 수 없는 쓰나미가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언제 십일 남매라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있었던가. 그 바람 또한 예고나 하고 불었던가. 이번에도 가족의 근원을 흔드는 슬픔이 거대한 쓰나미로 밀려와 덮쳤다. 넷쩨네 유학 간 딸이 한줌 재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죽지 않아야 할 때 가버린 황망한 죽음으로 남은 자들이 삭여야 하는 슬픔의 무게는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침식성이 강한 슬픔은 모두를 멀미하듯 허청거리게 했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나는 대가족의 맏며느리로서 잡아야 할 중심을 잡지 못했다. 외려 흐득흐득 눈물만 흘리는 자신이 비굴하도록 허허롭게 느껴졌다.

​얼마나 달렸을까. 창문을 열자 훅하니 덮쳐드는 비릿한 바다 내음에 정신을 차렸다. 차는 7번 국도를 휘청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막 지나온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야 했었는데 그냥 앞으로만 내달린 모양이었다. 그 순간, 어쩌면 가족이라서 함께해야 하는 신산한 여러 감정에서 나만의 감정 속도를 찾고픈 간절함이 작용했을까. 더이상 내 가슴이 뭉개지지 않으려 무의식이 바다 쪽으로 액셀러레이터를 밟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문득, 내 속도에 맞춰진 삶의 감각은 잃어버리고 자각도 없이 침몰해 가는 자신이 누추하고 덧없이 느껴졌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끝없이 덧그려지는 혼탁한 감정에 묻히기 전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도 같았다. 그 순간, 왜 결이 고움 청송의 단풍이 보고 싶었을까.

​무작정 달려간 청송의 늦가을은 선명했다. 뭔가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는 건 슬픔의 깊은 조짐이었다. 담대하게 허물을 벗기 위해 온몸을 불태우며 절정으로 가는 단풍의 울음 길에 섰다. 더러는 먼지가 되고 때론 바래져 가며 무르익어 가는 잎들의 고향인 나무에 오래도록 눈길이 머물렀다.

​만추로 향하는 내 인생 시계의 빛깔은 어떻게 물들고 있을까. 급한 성정이 요동칠 때마다 잔잔히 달래주지 못해 일찍이 바래져 버렸을까. 거르지 못한 화법으로 내 결정만 옳다고 남들을 몰아붙이기도 했으니 고운 색 한번 입어보지 못했을까. 완벽할 수는 없을지라도 타인의 입자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일에 인색했으니 한숨 죽어버린 빛은 아닐까.

​한 생의 비움을 공감할망정 동정하지 말라는 듯 남은 잎사귀를 털어내는 에움길 비탈길에 선 나무를 어루만지며 괜찮냐고 나직이 물었다. 도망치듯 튕겨 나온 외출에서 나는 말갛게 얼어붙은 죄책감으로 '괜찮으냐'는 말을 나무에 내뱉고 있었다. 아뿔싸, 그 말은 슬픔이라는 거대한 쓰나미를 마주한 우리 가족들이 들어야 할 말이었다. 오늘처럼 무너지지 않게 자신을 스스로 붙들어 주려는 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가에 미치자, 어둑발이 내리는 산야를 뒤로하고 급히 차 머리를 돌렸다. 전조등이 거리를 훑을 때마다 열사흘 밝고 청량한 달이 도로 위를 밝히며 따라오고 있었다. 남실거리며 산 위로 떠오르던 청송의 그 달이었다.

​이틀 뒤, 보름에 부분 월식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터였다. 오늘의 나처럼 도망쳐 나온 외출일까. 아니면 청송의 단풍을 죄다 품고 가는 건 반칙이니 조금 내놓고 가라는 듯 보채는 걸까. 그러나 본숭만숭했다. 내 가슴에 품었고 내 눈꺼풀 창고에 들었으니 내 것이라며 실랑이하듯 우기며 달렸다. 그래도 끈질기게 따라오는 달을 향해 새도복싱 하듯 허공에 펀치를 날려 보기도 했지만 무심하듯 사분대며 따라왔다.

​때론 생의 근원을 뒤바꿀 수 있는 큰 깨달음보다 제비꽃 같은 잔잔한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발견이 더 감동스러운 법이다. 높은 영봉들의 산세를 굽이돌 때면, 사늘한 길 끝에서 호야등 들고 마중나오던 어머니처럼 저만치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가 조근조근 내게 일러주었다. 너 자신의 모든 건 가족에서 연유되므로 삶터는 그들과 함께 가꾸어야 행복해진다고. 잡다한 생각들이 온몸과 마음을 휘감을 때 저릿하고 따듯한 그들의 한 호흡을 먼저 떠올려 보라고.

​길고 짧은 터널을 여럿 지났다. 그때마다 부드러운 듯 우아한 곡선의 능선 꼭대기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반겼다. 마치 깨금발로 이웃집 담장 너머 살피듯. 먼 듯 가까이서 걱정 어린 모습으로 지켜보듯 했다. 그 모습은 마치 유텬의 어느 날, 거짓말했다가 들통나 어머니께 종아리 타작을 당하고 뛰쳐나간 딸을 목줄 길게 빼고 대문 밖 살피던 아버지의 표정이었다. 슬픔의 캄캄한 터널을 지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공감이라고. 내가 먼저 향기를 내뿜어야 누군가에 향 내음이 밴다고. 질타 같은 타이름이었다.

​가족이라서 용서되고 막무가내로 함께하고픈 건 인지상정이리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춥거나 덥지 않기를, 누구도 비에 젖지 않기를, 괜찮냐고 위로하고 다독이며 물어봐 주는 그 마음 하나로도 충만하리라.

​달은 자늑자늑 낙엽 쌓이는 청송 골짜기로 돌아갔을까. 다음날 열나흘의 달로 뜬 걸 보니 돌아간 모양이다. 달은 언제나 바라보는 이의 몫이고 가슴에 담는 이의 것이라서, 어디서든 눈길 주는 이의 마음에 느낌으로 뜨게 마련이다. 만월에서 그믐으로 무한 반복되는 달의 여정처럼 가족이란 그런 존재임을, 어버이의 마음으로 다시 상기시켜 주던 그날 음력 시월 열사흘의 달. 어쩌면 그 달은 지금껏 대가족의 맏며느리라서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 써왔던 내 표출된 내면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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