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는 기억에 관하여 / 강미애

 

 

문득 길을 잃었다.

왜 이곳에 서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며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집에서 꽤 멀리까지 걸어왔나 보다. 나, 어디 가려고 했지. 어깨에 매달린 가방을 들여다본다. 몇 권의 책이 담겨있다. 아, 나는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다. 대출했던 도서를 반납하려고 집을 나선 것이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도서관을 지나쳐 버리고 낯선 거리에 서 있다.

요즘 들어 기억을 놓치는 일이 많다. 특별한 병후가 있거나 건망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이가 들어간다는 신호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기억들이 희미해지고 마침내 모두 사라진다면 내 삶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없을 때, 나는 '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삶의 연속성, 그래도 삶은 이어지겠지.

아파트 입구 작은 쉼터에서 가끔 만나는 어르신은 치매 환자다. 늘 의기소침한 표정이다. 자신이 기억하는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불일치하는 데서 오는 당혹감과 위축감 때문은 아닌지 짐작할 뿐이다. 어르신은 나를 볼 때마다 자신의 옆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한다. 누군가의 도움이, 누군가의 지지가, 누군가의 확인이 있어야 자신을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Still Alice>. 세 아이의 엄마, 사랑스러운 아내, 존경받는 교수로서 행복한 삶을 살던 주인공 앨리스(줄리언 무어)는 희귀성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되고 점점 기억을 잃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명망 있는 언어학자인 그녀는 짧은 단어조차도 기억해내지 못한다. 내가 '나'라는 사실을 상실해 가며 자기 자신에게 점점 낯섦을 느껴야 하는 소외감과 외로움.

하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기억하는 앨리스로 남아 있고자 노력한다. 알츠하이머가 한창 진행되던 와중에 그녀는 학회에 나가 감동적인 연설을 한다. '나는 날마다 상실의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평생 기억을 쌓아왔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들이 이제 모두 사라져 갑니다. 나는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예전의 나로 남아 있기 위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 역시 매일 상실의 기술을 배우고 있다. 목표를 상실하고, 잠을 상실하고 기억을 상실하는 중이다. 이제는 첫 키스의 생생했던 떨림을 기억할 수 없다. 좋아하던 노래의 가사들은 어둠 속으로 페이드아웃 된다. 늙는다는 것은 분명 두려운 일이다. 늙음이, 많은 상실과 고독을 내포한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내가 지닌 것을 영영 잃어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내 안에 켜켜이 간직하는 일이다. 내가 살아온 시간의 기억들이 바위가 되고 퇴적층의 무늬를 만드는 것처럼 차곡차곡 쌓여 '나'라는 존재의 현재를 규정한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현재의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내가 기억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기억이 나를 만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오늘의 기억이 내일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글과 사진으로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일상이라도 무엇으로든 담아내지 않으면 그마저도 시간과 함께 사라질 것이기에 조바심이 났다. 상실에 대한 복구의 예비 작업이다. 그것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하나씩 삶에서 놓아주어야 할 그때를 위해서.

사실 '내가 누군가'는 '내가 누구인가'를 스스로 기억하고 있는 것에 기초한다. 아내, 엄마, 선생님으로 불려 왔다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사실들뿐만이 아니라 어떤 이들과 어떻게 살아왔다는 것의 과거와 현재의 총합이 바로 지금의 '나'다. 그런 나를, 나의 일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얼마 전, 오래 투병하던 지인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마감 시간을 맞추느라 밤늦도록 글을 쓰던 그녀의 책상을 떠올린다. 물컵이 놓여 있던 자리의 동그란 흔적, 낡은 노트북 옆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몇 권의 책, 다급히 나갔음이 짐작되는 벗어놓은 겉옷. 의자 모서리에 조그맣게 새겨진 작은 이니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그녀의 서재는 주인을 잃었다.

하지만 어찌보면 죽음도 내가 이곳에서 살다 간 흔적이 아닌가. 실체는 없으나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겨진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나무는 매년 꽃을 피우고 잎을 떨구는 일을 그저 반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줄기 속에는 시간의 흔적이 나이테로 단단히 묶이고 있다. 나무는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한 해 한 해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삶의 흔적을 남길 것인가.

적어도 인류에게 흔적을 남기거나 철학자나 생물학자처럼 삶을 열심히 탐구할 생각은 없다. 다만 지구의 한순간을 스쳐 가는 존재로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고 그들의 흔적을 챙기며 살아가는 정도쯤으로 만족하련다.

기억은 삶의 흔적이다.

언젠가 지나간 날들을 돌이켜본다면, 우리는 오늘을 기억할 수 있을까.

상실의 기술을 터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많은 것들이 잃어버리겠다는 의도로 가득 찬 듯하니 그것들을 잃는다고 해서 재앙은 아니죠. -Elizabeth Bishop(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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