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그리고 놀이 / 정여송
열흘 후면 아랫집이 이사를 간다. 문 하나 열면 만날 수 있는 지척이 원로(遠路)가 될 터이니 한 달에 한 번이나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차 한 잔 마시자며 부른다. 바람도 쐬잔다. 나서려는데 자동차 키를 찾는다. 늘 놓았던 자리에 없는가 보다.
가방을 뒤진다. 부엌 싱크대 위, 서랍을 들춘다. 화장대 심지어 화장실까지 놓아둘 만한 곳을 더툰다. 머릿속에 담아 둔 녹음 짙은 나무와 그 사이로 난 시원한 길, 상쾌한 바람과 마음을 씻어 줄 풍경이 그만 민들레 홀씨가 된다. 작디작은 열쇠 하나가 온 머릿속을 다 점령한다. 친구는 기억 회로를 열고 어제 일들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결국 입고 나갔던 바지 주머니에서 찾아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내 글쓰기와 무작위로 닮았다.
정신없이 지내다가 어느 날 찾으면 없어진 물건들. 아무리 챙겨도 내 품에서 떠나 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언제나 가방 속에 있으려니 했던 볼펜, 어느 장소에선가 공손히 빠뜨리고 온 우산, 실밥이 풀려 아무도 모르게 떨어져 나간 단추, 셔츠를 벗을 때 소맷자락에 말려 나가 행방불명된 묵주 팔찌, 살결처럼 숨 쉬며 눈길과 목소리와 체온을 나누던 것들을 너무나 쉽게 잃어버린다.
한동안 나를 잃어버리고 산 적이 있다. 여느 아낙과 마찬가지로 내 안에도 부모와 남편과 아이들만 있었다. 아이들이 성큼 자라 내 손의 필요성이 덜어졌을 때 문득 바람 부는 광야 같은 허허로움에 시달렸다. 두려움마저 동반한 허전함은 나의 모든 것을 결박해 버렸다. 영원히 나올 수 없는 무저갱 같은, 홀로 표류된 듯한 나머지 ?함께?라는 개념조차 없는 곳에 서 있었다.
꿈을 키워야 했다. 꿈이 크면 클수록 그림자도 짙다고들 하지만 숨바꼭질하는 재미로 촛불을 들고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오래 전에 했던 것처럼 책을 읽어 댔고, 늦은 공부에 열중했다. 한 땀 한 땀 시간을 꿰맨 것이다. 세월을 적잖이 걸어왔으니 촛불 하나로 추위와 어둠이 걷히지 않는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녀린 촛불은 작은 대로 밝고, 작은 대로 따스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반짝거리는 자신을 방치한 채 모르고 살아가는가. 아깝기가 그지없는 일이다. 잘나지 못했지만 나는 찾고 싶었다. 또렷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휘영함을 달래고 메우기 위해서다.
늦춤 없이 나를 발견하는 일에 전념했다. 매진하다 보니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나오는 의외성과 맞닥뜨리기도 했다. 아직도 찾아내지 못한 나는 고여 있지 않고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른다. 순한 듯한데 당돌한 데가 있는 것 같고, 나약하지만 꼿꼿한 구석도 있다. 소극적 방위로 대처하면서도 발발(勃勃)한 의기를 뿜어내기도 한다. 스스로 만족스럽다가도 밉고 싫을 때가 한두 번인가. 참으로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때가 허다하다.
어떤 때는 집념과 용기, 소신과 적극성, 당당함과 대범함 등으로 뻔뻔하였다. 혹여는 내 감각에 어긋나거나 불필요하게 느껴진 것에 대해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치기도 부렸다. 우스꽝스럽게도 자기를 절대시하는 자기도취적인 면모를 보여 주기도 했다. 그렇게, 그렇게 새로운 자아를 찾기 위해 구각(舊殼)을 벗으려 정진했다. 치열함으로 거듭나려고 애를 썼다. 순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면서 당차게 요체도 잡아내었다. 그러다 보니 언뜻언뜻 운기 생동하는 자아를 만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휘영함을 면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정체성과 내면의 힘을 실은 사고의 깊이를 재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다. 도대체 먼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정신을 찾겠다고 건 모험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것이었든 고이 잠들어 있는 잠재력을 발굴하는 것, 자아를 재발견하는 일. 그것은 순간의 경이감에 젖어 보려는 열정 어린 놀이였다. 겁나게 흥미로운 놀이였다.
하지만 그 놀이의 시작은 언제나 노동이었다. 때로는 피를 말리고 뼈를 깎는 것 같은 고통을 겪었다. 불쏘시개에 불을 붙이면서 매운 연기에 목은 경련이 일어나 쿨룩거리고, 충혈된 눈은 눈물 범벅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과정을 언제고 거쳐야 했다. 더러는 면벽하고 있는 달마대사 앞에서 먹히지도 않는 거래를 제안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되었다. 형형한 눈빛으로 꿰뚫어 보고, 힘 있는 음성으로 말을 걸며, 꼿꼿한 자세로 기세를 펼쳤다. 천수관음보살 같은 손으로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되살려 내는 데 기력을 쏟았다. 순전히 노동이었다. 그쯤에 이르러서야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되어 장작더미를 태우게 되었다. ?노세 노세 젊어 노세? 하는 즐거운 놀이로의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내는 일, 숨어 있는 나를 이끌어내는 일, 보이지 않는 나를 그려내는 일. 그것은 참말로 힘든 노동인 동시에 신나는 놀이다. 나아가서는 내 문학의 발판인 동시에 삶의 여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