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손 / 윤미영
바다는 시치미 떼듯 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가 담벼락을 긁으며 천천히 지나간다. 어깨 위로 햇살이 하얗게 풀어져 내린다. 지난날 칠흑 같은 절망으로 벼랑 끝에서 한줌 재로 남을 뻔했던 시간들. 이제는 굳건히 한 길로만 걷는다. 조바심내지도 애타하지도 않는다. 그가 걷는 길은 새로운 여울이 된다.
봄이 깃든 영도의 '흰여울길'로 들어선다. 바다를 비추다 남은 오후의 햇살이 고샅마다 구불구불 돌아다니는 동네. 뱃사람 수부의 집들이 벼랑 위에 아슬하게 뿌리를 내리고, 서너 평의 파란 지붕은 따끈한 햇살 아래 말쑥하다. 썰렁거리는 샛바람, 된바람도 피하여 둘레둘레 어깨를 얹고 산다. 그네들은 삶의 터전이었던 바다를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나지 못했다. 나직한 담벼락마다 파도에 절은 옷가지를 널고 마를 새 없었던 눅눅한 삶도 말렸으리라. 바다로 난 창문의 칠이 벗겨진 창틀마다 기다림의 흔적이 드문드문 남아 있다. 누군가는 창가에서 바다로 조업 나간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지 않았을까.
'따닥따악…' 그때 낯선 소리에 귀가 열린다. 발아래 비탈길을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굽어진 모퉁이가 보인다. 그 어딘가에서 들리는 소리다. 점점 가까워진다. 허리 높이의 시멘트 담벼락을 따라 모습을 드러내는 이가 있다. 잿빛 날깃한 점퍼 차림의 거푸수수한 일흔 가량의 남자다. 나직한 발걸음으로 오른손에 쥔 무언가로 담벼락을 긁으며 올라온다. 내 왼쪽 어깨를 스친다. 소리도 따라다닌다. 손가락 굵기의 작은 나무막대기와 시멘트벽의 마찰소리였다. 들릴 듯 말 듯 낮게 벽을 긁으며 지나간다. 마치 손가락이 길어진 것처럼 보이는 '나무손'이었다. 그는 눈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나무손이 이끄는 대로 소리를 따라서 어디로 가는 중이다.
어릴 때 집 주변에는 골목이 많았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어둑살이 내리면 혼자 돌아오는 길은 심심하기도 하고 왠지 쓸쓸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땅바닥에서 작은 나무막대기 같은 걸 하나 주워서 울퉁불퉁한 시멘트 담을 슬슬 긁으며 골목을 빠져나오곤 했다. 덜 심심하고 무섭지도 않았던 기억이 난다. 작은 막대기 하나가 든든한 친구 같았기 때문이다. 다음날은 담벼락에 그어 놓은 희끗한 줄을 따라 학교로 갔다. 그즈음 골목의 담벼락에는 여기저기 실선들이 그어져 있었다. 이름 모를 아이들의 낯익고 쓸쓸한 길이었지 싶다.
그가 낫낫한 햇살을 받으며 지나간 담에도 구불한 실선들이 보이지 않게 남아 있다. 이제는 나무손으로 화려한 벽화가 그려진 벽을 파도 타듯 쉬이 넘는다. 이 길을 얼마나 다닌 것일까. 나무손은 닳아서 끝이 뭉툭할 것이다. 나무손을 쥐었던 손마디는 성하겠는가. 거칠한 세상의 벽을 긁느라 지문이 닳고 닳았으리라. 수없이 터졌다가 아물고 수시로 가시와 옹이가 박혔을 것이다. 하지만 동행하는 나무손이 있어 덜 외로웠는지 모른다. 그에게 눈과 귀가 되어 주는 나무손은, 길의 전율을 전해주고 세상의 소리도 대신 읽어줄 것이다. 나무손은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한 가닥 희망이다.
길은 길로 이어진다. 그 틈새에 젊은 추억을 묻었다. 한때 잘 나가는 수부였고, 청파를 가르며 만선의 기쁨으로 당당히 포구로 들어서던 가장이었으리라. 그가 올라온 길을 더듬더듬 내려간다. 나는 앞이 잘 보여도 움푹 팬 웅덩이에서 자칫 넘어질 뻔했다. 그의 발은 얼마나 꺾이고 휘청거렸을 것인지.
길의 기스락에 있는 ‘안내소’에 닿았다. 몸집이 작은 한 명이 겨우 오를 수 있는 대여섯 계단 위로 자그마한 안채가 서서히 드러난다. 조금 전 보았던 그가 안으로 들어간다. 그의 집인가 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거림은 세월의 무게를 말해준다. 이마가 닿을 듯한 방문을 들어서니 두세 명이 누울 만한 작은 방이 낯선 객을 맞아준다. 스케치북 크기의 창문을 통해 붉은 노을이 내린 바다가 수채화처럼 펼쳐져 있다.
방주인은 자매인가 싶다. 아기자기한 생활소품이 있다. 책갈피가 날깃한 책도 고개를 내민다. 지나는 바람이 책장을 넘긴다. 큰딸은 조업을 나가는 아버지를 배웅하고 돌아와 창가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을까. 동생과 조촐한 점심을 먹느라 펼쳐놓았던 부분에 햇살이 오래 머문 자리다. 그네들의 빛바랜 추억처럼 누렇다. 이 시각 무렵 바다에서 돌아올 아버지를 기다리곤 했겠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낮부터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바다에서는 파도가 높아졌다. 큰딸은 걱정을 앞세워 일찌감치 포구로 달려 나갔다. 아버지의 배는 일몰이 물러나고 어둑해지도록 뱃고동을 울리지 않았다. 어둠이 포구를 에워싸던 시각에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생각에 큰딸은 발만 동동거렸다. 얼마가 시간이 지났을까. 파도를 타고 멀리서 희미한 불빛 하나가 깜빡이며 들어오는 게 아닌가.
큰딸은 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안도감 속에서도 이유모를 불안감이 순식간에 스쳤다. 그래서 이웃집 김 할아버지를 급히 모셔 와서 배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시나브로 모습을 드러내는 거묵한 선채가 분명 아버지의 배였다. 갑자기 몰아친 폭풍우에 서둘러 혼자 그물작업을 하다가 얼굴을 다친 것 같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이었다. 큰딸은 피로 물든 아버지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주저앉을 뻔했다. 아버지는 딸의 목소리를 어렴풋이 들은 후 살아서 돌아왔다는 숨을 겨우 몰아쉬었다. 그리고 아픔을 애써 참으려는 듯 입술을 깨물면서 한쪽 손으로 딸을 찾았다. 아버지와 딸의 볼 언저리로 핏물과 눈물이 흘러내렸다. 병원으로 이송하는 내내 큰딸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몰려드는 아득함에 속울음만 삼켰으리라.
그날이 마지막 조업이었다. 그는 이 동네를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날 수 없었으리라. 지난날 기억의 편린들이 벼리처럼 발을 묶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날 눈감고도 걸었던 골목과 이 길을, 이제는 오랜 기억을 앞세워 뚜벅이며 걷는다. 선연한 바닷길과 젊은 날의 초상이 머문 막다른 골목 같은 시간을 빠져나오기까지, 그의 곁에는 큰딸이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의 손에 꼭꼭 쥔 나무손은 겨울 입김 뒤섞인 봄날을 휘휘 불어내며 걷는 동반자가 되었다.
독백을 벗 삼아 이 길을 걷고 또 걷는다. 말벗 없는 시간 속에서 가지 못한 길을 돌아보지 않는다. 어쩌면 꾸부정한 예각의 허리로 걸어가던 그의 뒷모습이 아칫거리며 불안해 보였던 것은 나의 착시였는지 모른다. 그의 나무손은 순한 눈빛으로 말한다. 보이는 대로 다 볼 수 없고, 원하는 만큼 다 담을 수 없다고. 눈이 보이면 보이는 대로,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자신이 느낄 수 있는 만큼만 세상을 보는 것. 그 삶이야말로 지혜롭고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라 한다.
긴 겨울을 지나온 봄 바다가 잔잔하다. 멀리 배들의 주차장이라 불리는 묘박지가 아스라이 떠 있다. 배들이 표표히 쉬고 있다. 그의 젊은 날도 저 어디쯤에서 닻을 내리고 있을 것이다. 그는 먼 데를 향해 귀부터 열어 두고 파도와 파도 사이를 오간다. 어느새 나무손이 긁는 소리가 흰여울길 끄트머리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