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허리 / 문선경- 제 1회 아주경제 보훈 신춘문예 당선작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참전 흔적을 확인하고 싶다며 좀 알아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최근에 외할아버지에 대해 나와 많은 얘기를 한 후였다. 주로 할아버지의 허리에 관해서였다. 6.25전쟁 당시에 엄마는 어려서 할아버지의 참전 내용을 정확히 몰랐다. 이제야 마주할 마음이 생겼는지 할아버지의 참전 기록을 찾아달라고 한다. 병무청에서는 할아버지의 주민 번호가 없어 군번 조회가 어렵다고 했다. 병무청과 육군본부에 문의 전화를 하느라 몇 주를 헤맸다. 군번 조회를 재신청한 지 3주째, 거의 포기하고 있을 때에 병적 증명서를 찾아가라는 문자가 왔다.

기억 속의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굽은 허리였고, 항상 밭은기침을 했다. 외갓집에는 언제나 할아버지가 드실 한약 달이는 냄새가 났다. 할아버지는 아프기 전에는 국민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 엄마가 장사하느라 어린 우리를 외갓집에 맡겨두면, 할아버지는 청개구리를 잡아서 보여 주거나 곤충채집, 장기 두는 법을 알려주었다. 까막눈에게 한자가 적힌 장기 말을 설명하는 게 가능한가 싶지만, 할아버지에게 장기 두는 법을 정확히 배웠다. 할아버지 방에서 잡다한 물건을 만지기도 했다. 침이 든 납작한 쇠통이나 막대자, 주판, 저울 같은 것들이었다.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는 이런 상황이귀찮을 법도 한데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옆에서 지켜보면서 물건의 쓰임새를 설명해 주셨다. 건강이 허락했다면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친절한 선생님으로 학교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툇마루에 앉은 할아버지 등에 업히면서 장난을 칠 법도 한데 어린 마음에도 굽은 허리는 언제나 아파 보였다. 같은 자세로 숙여야 하는 목이 불편한지 할아버지는 마당에서 가끔 허리에 손을 짚고 허리 젖히기를 했다. 뒤로 펴지지 않는 할아버지의 굽은 허리가 화인처럼 머릿속에 각인 되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얼마 뒤에 돌아가셨다.

언젠가 할머니에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허리가 왜 굽었는지 물어 보았다. 허리를 크게 다쳐서 굽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른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할아버지의 허리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은 외갓집에서 일종의 금기였다. 그 뒤로도 나는 가끔 엄마에게 할아버지의 굽은 허리에 대해 물었다. 물을 때마다 다친 이유가 조금씩 달랐다. 운동하다가 다쳤다, 일을 하다가 다쳤다, 등 누구나 허리를 다칠 법한 일반적인 이유를 말했지만, 이야기는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질 않았다. 전쟁 당시 5살이었던 엄마는 긴 세월 동안 덮어둔 이야기를 최근에야 해주기로 결심한 듯하였다.

6.25 전쟁이 일어나기 얼마 전, 외갓집 친척 하나가 마을에서 사라졌다. 대학까지 나온 그 젊은이는 월북을 의심 받았다. 할아버지와 그 젊은이가 친분이 있었는지, 할아버지는 바로 경찰서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 3대 독자인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증조할아버지는 양조장을 팔았다.

할아버지가 유치장에 있던 어느 날이었다. 모두 밖으로 나오라 하자, 누군가 할아버지더러 숨으라 했다.

“김 선생, 김 선생은 밖으로 나가지 말고 문 뒤로 숨으시오.”

그날 유치장 안에 있던 사람은 모두 죽었다. 삼촌을 임신한 몸으로 할머니는 동네 뒷산에 방치된 시신 더미에서 미친 사람처럼 할아버지를 찾았다고 했다. 목숨을 겨우 건진 할아버지는 타지에 있는 먼 친척 집으로 기어가다시피 도망쳤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추스르던 중에 6.25 전쟁이 일어났다. 할아버지는 징병 대상도 아니었지만 성치 않은 몸으로 50년 가을에 자원입대를 하였다. 집안에 월북자가 있는 걸 의심 받는 상황이었으니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빨갱이가 아님을 나라에 증명하기 위해 내린 선택이었다.

전쟁 막바지에 할아버지는 의병 제대를 하고 장기간 요양에 들어갔다. 요양을 하다가 도중에 학교로 다시 돌아갔지만 건강 문제로 오래지 않아 결국 퇴직했다. 요양 시간이 길어질수록 할아버지의 허리가 굽었다. 그리고 굽은 허리는 펴지지를 않았다. 할아버지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신세나 지난 시간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던 모양이다.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서 한 톨의 먼지 같은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굽은 허리는 할아버지의 상처이자 집안의 상처였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할아버지는 병상에서 얼마 못 버티고 돌아가셨다. 외갓집식구들은 이번에야말로 진짜 기둥이 무너졌다는 듯이, 모든 걸 잃었다는 듯이 격하게 울었다.

병역증명서를 찾으러 가는 길은 마치 과거로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툇마루에서 신문을 보는 할아버지의 굽은 허리와 그걸 불안하게 보던 시간으로 되돌아갔다. 재앙을 피하는 방법이 개인의 희생이었다면 할아버지는 죽음을 기꺼이 맞을 각오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희생 덕에 지금 내가 과거로 걸어가고 있다.

병역증명서를 재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삼 주 동안, 꿈에 외갓집의 마당이 보였다. 흑갈색의 나무대문을 열면 단단하게 다져진 흙길 좌우로 사루비아, 분꽃, 맨드라미가 활짝 피어있었다. 대청마루까지 걸어가면 대청마루 옆 첫 번째 방에 할아버지가 있으리란 걸 알지만, 나는 매번 흙길에 멈춰 쪼그리고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을 보고 있었다. 새벽이슬을 머금은 꽃들은 촉촉이 젖어 빛깔은 선명했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흙냄새는 뭐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따스했다. 어느 날은 바람결에 할아버지 기침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엄마에게 군번과 병적 기록을 사진 찍어서 보냈다. 엄마는 할아버지의 군번을 외삼촌에게 알려주었다. 삼촌은 한 장의 옛날 사진을 내게 보내 주었다. 고등학생 정도로 되어 보이는 학생들로 머리는 짧았고, 키도 엇비슷했다. 등 번호가 적힌 줄무늬 상의에 흰 반바지를 입은 열 댓 명의 학생이 뒤엉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상태에서 찍은 흑백 사진이었지만 허리를 곧게 펴고 상대에게 달려가는 할아버지를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한 번도 허리를 편 할아버지를, 젊을 때의 할아버지를, 그리고 달리는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는데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는 동안 주위에서 흙냄새가 나는 듯 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