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에 뜨는 별 / 정목일

 

 

‘한번 찾아가 보리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껴둔 곳이 있다.

사람마다 ‘추억의 성소(聖所)’가 있기 마련인데, 나에게도 그런 곳인 셈이다.

​시야에 남덕유산과 학교 모습이 보이자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예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을까? 학교 풍경과 제자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때 20대 총각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폐교가 된 지 오래된 운동장엔 잡초가 무성했다. 교사(校舍) 중앙에 ‘정직·질서·창조’라는 교훈이 그대로 붙어 있을 뿐 운동장엔 아이들 대신 잡초만 자라고 있었다. 교기 없는 게양대는 녹이 슬어 벌겋게 변해 버렸지만 풍향계는 혼자 돌고 있었다.​

나는 문짝이 떨어져 나간 현관문 안으로 발을 들여다놓았다. 2년간 아이들을 가르쳤던 교실이며, 교무실을 보고 싶었다. 복도는 상수리나무 낙엽과 먼지로 뒤덮이고 교실 안은 망가지고 뜯겨져 있었다. 칠판이 부서진 교실, 바닥이 뜯겨진 교실, 학습 게시판이며 신발장, 유리창, 성한 곳이 없이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폐교가 되었다 한들 이렇게 황폐한 꼴이 될 수가 있으랴 싶었다. 수업을 하던 교실에 가보았다. 먼지가 쌓인 교실은 기억의 뒤안길로 희미한 등불을 들고 사라져 옛날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젊은 한순간을 산골 아이들과 함께 보내던 곳이 아닌가. 나는 참담한 기분에 사로잡혀 마룻바닥을 쿵쿵 울려 보았다. 누군가 한 사람만이라도 나타났으면 좋으련만 싶었다.​‘착한 어린이가 되자’는 급훈이 붙어 있던 벽을 바라보았다. 낙서가 어지러운 칠판 곁에 우두커니 서서 바닥에 떨어진 조그만 분필을 손에 들고 무심결에 이름을 쓰고 있었다.​‘한임창, 이호일, 박성봉, 표옥분····.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도 이제 40대가 되었으리라.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이 이러한 광경을 보기나 하였을까. 마음속에 곱게 간직해 두었던 추억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듯했다. 젊은 시절의 순수한 열정을 다 바쳤던 곳이 아닌가.​나는 학교에서 나와 조산마을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혹시나 눈에 익은 농부를 만나서 인사라도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냥 발길이 돌려지지 않았다. 동네 안으로 들어서자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집 안은 비어 있었다. 돌담엔 능소화가 눈부시고 곁엔 접시꽃이 피어 있었다.​ D교는 나의 첫 부임교였다.

덕유산 기슭, 어떻게 이런 외진 곳에 학교가 있으랴 싶었다. 발령장을 받아 버스를 타고 내린 곳이 함양군 서상면이었다. 폭설로 길이 막혀 시오 리 길을 걸어야 했다. 겨울이면 눈이 자주 내려 교통이 두절되기 예사여서 해동할 때까지 산 속에 묻혀 지내야 하는 곳이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학교에 도착하였을 때는 몸이 얼어 거의 동태처럼 되었고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교장에게 부임인사를 드렸더니, “세상에 제일 험한 곳에 왔다”고 말을 꺼낸 뒤 “지내다 보면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위로했다. ​D교는 해발 750미터 덕유산 기슭에 위치해 있었고, 다섯 개의 작은 마을과 화전민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폭설은 갑자기 덕유산과 마을을 점령하고 꼼짝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부임하자마자 산과 눈 속에 억류된 것을 알았다. ​잊혀지지 않는 수업장면이 떠오른다. 별자리를 공부할 때였다. 밤에 운동장으로 아이들을 불러들였다. 별자리 공부야말로 낮에 교실에서 책을 보며 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 어두워지는 산 속의 밤ㅡ. 아이들이 호롱불을 들고 하나, 둘 모여들었다. 운동장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이들과 함께 바라다본 밤하늘은 경이와 신비의 세계였다. 끝없이 보석들을 박아 놓은 듯한 별나라가 펼쳐져 있었다. 별들은 무엇인지 모를 소중한 말을 건네고 있는 듯 했다. 이때처럼 밤하늘을 오래오래 바라다 본 적이 없었다.​“자, 여름철의 별자리에 대하여 공부해 보도록 하자.”​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별들에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나의 음성이 떨려 나오는 것을 느꼈다.​“저어기, 국자모양으로 생긴 별자리를 보아라.”​아이들은 내가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서 머리 위의 일곱 개의 별들을 바라보았다.​“네 번째 좀 희미한 별이 있지? 그것만 3등성이고, 그 외는 모두 2등성이란다. 제일 끝에 여섯 번째의 별과 일곱 번째의 별의 거리만큼 다섯 배 나아가면····.

저어기 하나의 별이 보이지?” ​“네····보여요!” ​아이들의 말이 탄성처럼 울렸다.​ “저, 별이 북극성이다. 북극성은 지구의 북쪽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길을 잃었을 때 저 별을 보고 방향을 안단다. 잘 알아두어라. 등대와 같은 별이라 할 수 있지. 너희들도 길을 잃을지 모르니까····. 북극성을 포함하여 주위에 있는 별들을 합쳐서 ‘작은곰자리’라 부른다.”​

“선생님, 정말 곰 같아요.” ​공부라면 꼴찌인 천식이가 말했다. ​“북극성에서 북두칠성이 있는 아까와는 반대로, 다섯 배만큼 나아가면, 저어기 W자 모양의 다섯 개의 별이 보이지? 저 별이 ‘카시오페아’다. 그리스의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에티오피아의 아름다운 왕비 ‘카시오페아’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 같다 하여 ‘카시오페아’라고 부른다.”​ 우리는 별들과 이마를 맞대고 별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산간벽지의 아이들과 별 이름들을 하나씩 찾아보던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때 처음으로 지상의 세상만이 아닌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생에 있어서 가장 가까이서 오랫동안 별들과 눈맞춤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 이후부터 별을 볼 적마다 덕유산 기슭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별을 바라보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몰래 금가루를 뿌려 주며 속삭여 주는 듯한 수많은 별들이 떠오르곤 했다.​폐교엔 아무도 없었다. 퇴색과 망각이 잡초 속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이들의 음성이 들릴 것 같은 교실은 부서지고 망가진 채 버려져 있었다. 무섬증이 들 만큼 음침하고 퇴락한 폐교, 웃자란 잡초 속에 녹슨 채 버려져 있는 미끄럼틀이며 철봉들····. 나는 운동장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눈을 감고 아이들과 함께 별을 찾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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