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구두 / 김응숙

 

침대 난간을 잡고 몸을 일으킨다. 등이 침대에서 떨어지고, 시선이 각도기의 눈금을 따라가듯 둥글게 움직이다 직각쯤에서 멈춘다. 발을 침대 아래로 내린다. 신발을 찾을 수 없다. 맨발이 바닥에 닿는다. 일어서려는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옆에 있던 딸이 얼른 팔짱을 낀다.

병실 창문이 보인다. 누워서 볼 때보다 더 높아진 것 같다. 한 걸음씩 창문을 향해 다가간다. 조금 어지럽다. 창틀에 몸을 기댄다. 병원 밖은 여전히 봄이다. 4층이지만 공중 중원이 있어 창밖은 푸르다. 봄꽃들 사이로 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간다. 눈으로 나비를 쫓는다.

텃밭을 하던 때가 있었다. 봄이면 장다리꽃 사이로 노랑나비들의 군무가 펼쳐졌다. 그즈음 봄배추의 속잎이 나는데, 이때가 배추벌레의 전성기이다. 배추벌레는 연한 잎을 갉아 먹고 동글동글한 녹색 똥을 남겼다. 그 근처의 배춧잎을 뒤집어보면 연두색의 통통한 애벌레를 만날 수 있었다. 손가락에 집힌 애벌레는 물컹거렸다. 척추도 없이 꿈틀거리는 애벌레가 노랑나비가 된다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한 달 동안 나는 커다란 애벌레가 된 기분이었다. 일하다 주저앉았을 뿐인데 4번 척추가 골절되었다. 의사는 자연적으로 뼈가 붙을지 한동안 지켜보자고 했다. 경첩처럼 몸을 굽혔다 폈다 하는 자리에 이상이 생기고 보니 일어설 수가 없었다. 꼼짝없이 침대에 등을 붙이고 누워있어야 했다. 시트가 배겨도, 이불이 다리를 휘감아도 어쩌지 못했다. 그저 땀을 뻘뻘 흘리며 조금씩 꿈틀거릴 뿐이었다.

수직의 세계를 잃어버리자 인간의 존엄이 뭉그러졌다. 땀과 무기력이 버무려지며 몸이 밀가루 반죽처럼 치대지는 것 같았다. 뼈 없이 온몸으로 중력을 받아내는 존재들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내 몸은 물컹거리는 한 마리 애벌레였다.

상상으로도, 지식으로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체험이다. 몸으로 경험해야만 얻을 수 있는 느낌이다. 도대체 배추 애벌레는 고치 속에서 무슨 체험을 한 것일까. 얼마나 치대어져야 그 물컹거리는 살이 날개가 될까. 어쩔 수 없는 과정들을 얼마나 온전히 받아들여야 그토록 예민한 두 더듬이가 돋아날까. 탈피라는 짧은 단어에 들어있는 말 없는 말들을 남기며 노랑나비는 시야에서 사라진다.

매주 찍었던 4장의 척추 사진들을 판독해보니 뼈는 붙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시술받기로 했다. 척추 양쪽으로 두 개의 구멍을 뚫고 기구를 넣어 내려앉은 뼈를 들어 올리고, 튜브를 통해 골절된 뼈를 굳게 할 물질을 넣는다고 했다. 콘크리트 타설과 같은 방법이다. 부분마취로도 가능한 간단한 시술이라며 의사는 실망하는 나를 위로했다.

척추에는 신경 다발이 지나가는 통로가 있다. 그러므로 시술 중간에 팔다리의 움직임을 확인해야 한다. 전신마취를 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다시 말해 부분마취란 뼈에는 마취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시간여의 시술을 받으며 인간의 통각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알았다. 기구를 내려치는 작은 망치 소리가 극심한 통증과 함께 몸 안을 공명했다. 연신 신음을 뱉어냈다. 그러나 다시 걷기 위해서는 겪어내야만 하는 고통이었다. 고치처럼 꼼짝없이 수술대에 엎드린 채 나는 그 어쩔 수 없는 과정들을 견딜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탈피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인간에게 직립보행은 나비가 나는 것과 같은 것이니 말이다.

물론 인간은 탈피하는 동물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진화과정을 통틀어 가장 탈피에 가까운 것을 들자면 직립보행이 아닌가 싶다. 앞발을 들고 허리를 편 최초의 인간. 그에게는 마치 입체 카드를 펼친 것처럼 새로운 공간이 생겼을 것이다. 수평의 공간에 수직의 매직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시야가 넓어지고 가슴에는 더 높은 곳을 향한 비전이 깃든다. 600만 년 전에 이루어졌다는 인간의 출현이다. 직립보행은 동물과 인간을 가르는 탈피의 과정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척추는 큰 대가를 지불한 것으로 보인다. 일 자이던 척추는 에스 자로 휘었고, 그런 척추를 받치기 위해 골반은 좁아졌다. 상체가 곧추서면서 온통 체중이 두 다리에 실렸다. 직립보행이 가능해졌다고 해서 인간이 앉고 눕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이다. 당연히 척추의 아랫마디에게는 그때마다 힘을 조절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4번을 포함한 요추들은 인간으로의 탈피라는 아주 오래된 서사를 지닌 척추마디들이다.

딸의 부축을 받으며 병실을 한 바퀴 돈다. 병상마다 탈피를 꿈꾸는 이들이 누워있다. 정형외과 병동이다 보니 팔이나 어깨, 다리에 두른 붕대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인다. 의사는 이삼 주 후 시술 부위에 있는 실밥을 뽑으면 퇴원할 수 있다고 한다.

퇴원하고 두 달이 흘렀다, 봄이 가고 여름도 가려고 한다. 이제 조금씩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엄마의 상태를 확인하러 온 딸과 함께 근처 아울렛에 들른다. 구두 가게 진열대에 놓인 노란 구두가 눈에 들어온다. 눈앞에서 노랑나비가 팔랑 날아간다.

“엄마, 다시 걷는 기념으로 이 구두 사줄까?” 딸이 묻는다. 굽 낮은 노란 구두가 내 발에 꼭 맞다. 거리로 나오니 주말을 맞은 쇼핑객들이 분주하게 지나간다. 노란 구두를 자꾸만 내려다본다. 노랑나비 옆으로 나름의 탈피를 겪었을 흰 나비, 검은 나비들이 팔랑팔랑 날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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