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노래를 들어라
-남해안 경작지
김 훈
풀은 풀의 비애로써 인간의 비애를 헐겁게 한다.
봄의 흙은 헐겁다. 남해안 산비탈 경작지의 붉은 흙은 봄볕 속에서 부풀어 있고, 봄볓 스미는 밭들의 이 붉은색은 남도의 봄이 펼쳐내는 모든 색깔 중에서 가장 깊다. 이 붉고 또 깊은 밭이 남도의 가장 대표적인 봄 풍광을 이룬다. 밭들의 두렁은 기하학적인 선을 따라가지 않고, 산비탈의 경사 각도와 그 땅에 코를 박고 일하는 사람들의 인체 공학의 리듬을 따라간다. 그래서 그 밭두렁은 구불구불하다. 밭들의 생김새는 “뱀과 같고 소 뿔과 같고 둥근 가락지 같고 이지러진 달과 같고 당겨진 활과 같고 찢어진 북과 같다.”(『목민심서』)라고 다산은 말했다. 가로 곱하기 세로로 그 땅의 면적을 산출해내는 지방 관리들의 무지몽매를 다산은 통렬히 비난했다. 가로 곱하기 세로가 합리성이 아니고, 구부러진 밭두렁을 관념 속에서 곧게 펴는 것이 과학성이 아니며 구부러진 리듬의 필연성을 긍정하는 것이 합리라고 다산은 말한 셈이다. 그리고 그가 긍정했던 그 구부러진 밭두렁들은 지금도 남도의 봄볕 속에서 그렇게 구부러져서 둥근 가락지 같고 이지러진 달과 같다.
그 경작지에서 언 땅이 녹고 햇볕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흙의 관능은 노곤하게 풀리면서 열린다. 봄에 땅이 녹아서 부푸는 과정들을 들여다보는 일은 행복하다. 이 행복 속에서 과학과 몽상은 합쳐진다.
땅 위의 눈을 녹인 초봄의 햇살은 흙 표면의 얼음을 겨우 녹이고 흙 속으로 스민다. 흙 속에서는 얼음이 녹은 자리마다 개미집 같은 작은 구멍들이 열리고, 이 구멍마다 물기가 흐른다. 밤에는 기온이 떨어져서 이 물기는 다시 언다. 이때 얼음은 거울처럼 꽝꽝 얼어붙지 않고 가볍게 언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햇살이 내리쬐어서 구멍마다 얼음은 녹는다. 물기는 얼고 녹기를 거듭하면서 흙 속의 작은 구멍들을 조금씩 넓혀간다. 넓어진 구멍들을 통해 햇볕은 조금 더 깊이 흙 속으로 스민다. 그렇게 해서, 봄의 흙은 헐거워지고, 헐거워진 흙은 부풀어오른다. 해가 뜨기 전, 봄날의 새벽에 밭에 나가보면 땅 속에서 언 물기가 반짝이는 서리가 되어 새싹처럼 땅 위로 돋아나 있다. 이것이 봄 서리이다. 흙은 초겨울 서리에 굳어지고 봄 서리에 풀린다. 봄 서리는 초봄의 땅 위로 돋아나는 물의 싹이다.
봄풀들의 싹이 땅 위로 돋아나기 전에, 흙 속에서는 물의 싹이 먼저 땅 위로 돋아난다. 물은 풀이 나아가는 흙 속의 길을 예비한다. 얼고 또 녹는 물의 싹들은 겨울 흙의 그 완강함을 흔들어서 풀어진 흙 속에서는 솜사탕 속처럼 빛과 물기와 공기의 미로들이 퍼져나간다. 풀의 싹들이 흙덩이의 무게를 치받고 땅 위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흙덩이의 무게가 솟아오르는 풀싹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풀싹이 무슨 힘으로 흙덩이를 밀쳐낼 수 있겠는가. 이것은 물리현상이 아니라 생명 현상이고, 역학이 아니라 리듬이다. 풀싹들은 헐거워진 봄 흙 속의 미로를 따라서 땅 위로 올라온다. 흙이 비켜준 자리를 따라서 풀은 올라온다. 생명은 시간의 리듬에 실려서 흔들리면서 솟아오르는 것이어서 봄에 땅이 부푸는 사태는 음악에 가깝다.
겨울을 밭에서 나는 보리는 이 초봄 흙들의 난만한 들뜸이 질색이다. 한창 자라날 무렵에 헐거워진 흙들이 뿌리를 꽉 껴안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흙을 이해하는 농부는 봄볕이 두터워지면 식구들을 모두 보리밭으로 데리고 나와서 흙을 밟아준다. 농부는 보리가 봄을 다 지낼 때까지 부풀어오르는 흙을 눌러놓는다.
돌산도 남쪽 해안선을 자전거로 달리다가 밭을 가는 늙은 농부한테서 봄 서리와 봄볕과 흙과 풀싹이 시간의 리듬 속에서 어우러지는 사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늙은 농부는 농부답게 어눌했지만 서울에 돌아와서 토양학을 전공하는 교수들에게 물어봤더니 농부의 얘기가 다 맞다고 한다. 밭두렁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자꾸 캐물으니까 늙은 농부는 “이 사람아, 싱거운 소리 그만하고 어서 가. 그게 다 저절로 되는 게야.”라고 말했다.
무당들의 노래는 세계의 근본을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 노래가 ‘본풀이’이다. 제주도 무당들의 본풀이는 대하소설처럼 웅장한 구도를 갖는다. 본풀이는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마침내 설명하고 거기에 언어를 부여한다. 그래서 그 노래는 신들의 노래가 아니라 인간의 노래다. 경북 지방 무당들의 본풀이는 흙의 근본을 이렇게 풀어낸다.
태초에 땅 위의 세상은 진흙 뻘밭이었다. 하늘나라 공주가 가락지를 이 진흙 수렁에 떨어뜨렸다. 하느님은 남녀 한 쌍을 이 세상으로 내려보내 가락지를 찾아오도록 했다. 남녀는 손으로 진흙 수렁을 주무르며 가락지를 찾아 헤맸으나 찾지 못했다. 진흙 수렁 속에서 남녀는 정이 들어 사랑했다. 남녀는 하느님의 명령을 배반하고 가락지 찾기를 집어치웠다. 남녀는 이 세상의 진흙 수렁에서 살기로 작정하고 결혼했다. 이 부부가 가락지를 찾기 위해 손바닥으로 주물렀던 진흙 수렁은 마른 흙이 되었고 이 흙 속에서 풀과 곡식들이 돋아났다. 이것이 밭이다.
이 노래의 전언傳言은 선명하다. 흙과 밭은 사랑과 고난의 자리로서 인간에게 주어졌다. 이 흙은 하느님의 몫이 아니라 버림받은 인간의 몫이다. 손바닥으로 주물러야만 한 줌의 진흙은 한 줌의 경작지로 바뀐다. 하느님의 가락지는 진흙 속에 숨어 있고 사람들이 그 가락지를 찾지 못해도 이 사랑과 고난이 사람들을 그 땅에 붙잡아서 정주定住하게 한다.
지금, 봄볕에 깨어나는 경작지 위에서 늙은 농부들은 흙을 주무르고 있다. 마늘밭과 봄동밭과 시금치밭에 김을 매고 있다. 부부가 함께 일할 때 늙은 부부는 이쪽저쪽으로 멀리 떨어져서 일한다. 늙은 부부는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지만 한마디도 말을 나누지 않는다. 날이 저물어 돌아갈 때도 남편이 앞서고 아내는 몇 걸음 떨어져서 뒤따른다. 그들은 말로 의사소통을 하는 단계를 넘어섰거나 아니면 소통되어야 할 의사가 이미 다 소통되어버린 것 같았다. 밭 가운데 무덤들이 들어앉아 있다. 한평생 그 밭을 갈던 농부가 죽어서 그 밭 속에 누워 있다. 부부가 함께 밭으로 들어가서 누운 무덤들도 있다. 그 밭 옆에는 구석기시대의 고인돌 무덤도 있다. 부푸는 봄의 흙 속에서 새파란 것들이 일제히 솟아오르고 있다.
-김훈 에세이 《자전거 여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