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철도 1호선에서 / 이미성

 

 

알쏭합니다. 도시철도 1호선 출발지는 다대포해수욕장역인가요, 노포동역인가요. 출발지이면서 목적지이기도 하군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이면서 또 다른 경계를 갖는 인생 같습니다. 현자는 목적지를 가지라고 조언합니다. 누구나 목적지도 있고 경유지도 있다고 해요. 나도 목적지가 있는 듯해요. 지금, 내 목적지는 장전동역입니다.

오전 10시 하단역에서 도시철도 1호선을 탑니다.

사람1, 사람2가 조금 떨어져 앉아있어요. 사람관계란 늘 가까울 수 없어요.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이 훨씬 좋은 관계일 수도 있거든요.

사람3과 사람4는 아는 사입니다. 다정하게 귀엣말을 나눕니다. 서로 바라보는 시선에 애틋함이 묻어납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한때 그는 존재만으로 가슴이 뛰는 사람이었지요. 귀찮기도 하고 짐스럽기도 하고 한편 안쓰럽기도 해요. 식사와 화장실 습관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지요. 아귀같이 입을 벌려 하품을 하고 고무줄 늘어진 바지를 입어도, 주름진 민낯마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었네요. 시간이 가슴을 잠재웠을까요.

사람5가 서대신동역에 타서 사람1과 사람2 사이에 앉습니다. 결혼은 나와 그의 결합 뿐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과도 유대관계를 맺는 것인데요. 나와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어 인생을 돌아온 기분이 듭니다. 사이에 낀 관계가 불편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생각을 바꿨으면 좋았을 텐데. 그땐 나도 젊었고 뭐든 처음이어서 서툴기만 했어요. 관계에 틈이 생기고 느슨해지면서 회한도 깊어지네요. 역시 해결은 시간일까요.

사람1과 사람5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봅니다. 작은 기계 속의 세계는 마약처럼 외롭고 슬프고 때로 잔인해요. 나도 없고 그도 없는 철저히 타인의 세계지요. 그가 내 시간을 이리저리 끌고 갑니다. 사회가 만든 커리큘럼에 따라 노예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사람2가 졸고 있네요. 문득 나도 하품이 납니다. 더러 지루한 삶이기도 해요. 다람쥐쳇바퀴 같은 삶 속에서 앞을 모르고 뛰면서도 권태로운 순간이 있다는 건 놀라워요. ‘이방인’의 뫼르소가 이런 순간 권총을 쏘지 않았을까요.

언제 어디에서 내렸는지 사람3과 사람4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네요. 내 할머니도, 아버지도 기약도 없이 가셨지요. 누군가의 시선에서 나도 그렇게 사라지겠지요. 지금도 시선 밖으로 걸어가는 중인걸요.

사람7이 좌석에 앉으려다가 사람6을 쳤습니다. 사람6이 아프다고 고함을 지릅니다. 사람7이 살짝 쳤는데 뭐 그리 아프냐고 샐쭉거립니다. 사람9가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사람8이 눈을 흘기며 부랴부랴 내립니다.

세상은 늘 시끄러워요. 오늘도 불이 나고 홍수가 나고 지진이 났는데요. 뉴스는 매일 새로운 듯 같은 싸움을 보도하지요. 예를 들면 어제는 아이와 아빠가 싸웠고 오늘은 위층 사람과 아래층 사람이 치고받다가 119를 불렀다는 식이에요. 남쪽에는 때아닌 눈이 오고 북쪽에는 꽃이 핀다고도 해요. 국회는 자기들끼리 전쟁을 하다가 결국 국민을 위한 시간은 낼 수 없을 거라는 소식도 있지요. 그동안 물가는 계속 올라갈 거래요. 또 누군가는 죽겠지요.

사람10, 사람12, 사람13이 몰려 들어옵니다. 서 있던 사람11이 사람8이 앉았던 좌석에 앉습니다. 바로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습니다. 아주 멀리 갈 것처럼. 아마 종착역까지 갈지도 모르지요. 그때까지는 그 좌석에 안주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종착역이 목적지일까요. 세상에 내 것은 없을지도 몰라요. 잠시 빈 의자에 내 것처럼 앉았다 가는 인생 아닐까요.

나는 장전동역에서 내립니다. 유명한 정형외과에서 예약 없이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항상 환자 몫이니까요. 아픈 어깨가 정말 괜찮아지고 있는 건지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비수술적 진료로 용하다는 소문을 믿고 새벽부터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1,2,3,4...... 몸이 아파 마음까지 아픈 사람들은 누구의 눈에는 희극입니다. 의사는 노화를 받아들이고 웬만한 통증은 친구하며 살라고 말합니다. 인생은 고해라고 했으니 통증쯤이야 당연할지도 몰라요.

다시 도시철도 1호선을 탑니다. 목적지는 하단이 아닙니다. 경유지도 하단이 아닙니다. 이미 강은 매립되어 버린 걸요. 아파트가 숲을 이룹니다. 이름만 남은 강의 역사는 아파트 밑에서 깊이 잠을 잡니다. 언젠가는 기억에서도 멀어지겠지요. 더 이상 재첩도 길어 올릴 수 없는 빈 젖꼭지가 된 모성입니다.

이번에는 부산역에서 내립니다.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할까요. 어쩜 나는 목적지를 잃었을지도 몰라요.

누군가 입맛 다시는 김밥 같은 길 위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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