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해야 할 이야기들 / 허정진

 

 

“고맙다, 고맙다.” 왜, 어머니는 전화를 드릴 때마다 이렇게 대답하는 것일까? 어쩌다 가끔, 그것도 직접 찾아보는 것도 아니고 겨우 안부 전화나 하는데도 애잔한 말투로 자꾸만 그렇게 중얼거린다. 구순을 바라보는 노모, 혼자 살고 계시지만 아직은 근력이 있어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고 있는 어머니다. ‘고맙다’라는 그 말에 마음이 흔연해지기는커녕 도리어 불효자가 된 것 같아 울적한 기분이 든다.

노년층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주위에 생을 이별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동창들도 오랜 질환이나 병고로, 뜻하지 않는 사고나 천재지변으로 목숨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생명이 언제까지나 영원한 것도 아니고, 당장 내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 안전이 보장된 세상도 아니다. 그런 부음 소식을 받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서늘한 댓잎 바람 지나가고 머릿속은 텅 빈 허공이 되어 삶이 무엇인지, 제대로 살고나 있는 것인지 한 번쯤 되돌아보게 된다.

불쑥불쑥 옛날 생각이 떠오를 때도 많다. 이상하게도 좋은 추억보다는 미안하고 낯부끄러운 일들이 먼저 떠오른다. 부모님에게 그때 왜 그렇게 섭섭한 말을 내뱉고 말았는지, 때로는 처자식들에게 그때 왜 그렇게 바쁘다고만 둘러댔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그때 왜 그렇게 냉정한 모습을 보였는지, 술을 핑계로 저지른 철없는 행동들까지 얼굴이 화끈거리고 후회가 앞서는 일들이다. 그들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를 왜 이제야 되돌아보게 되는 것일까. 내가 아는 나의 죄와 남이 아는 나의 죄와 내가 모르는 나의 죄와 남이 모르는 나의 죄는 분명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사람의 기억은 두 가지다. 감동하였을 때이거나 상처받았을 때가 오랫동안 흔적으로 남는다. 뭐 하나 확실하지 않은 게 인생이다. 가위에 주먹이 이기고 주먹은 보자기에 지고 결국 다시 가위에 지게 되는 관계를 보면 세상에 절대적으로 이기고 지는 경계는 없는 것 같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서로 간에 의미가 된다는 것은 나의 고집이나 승리자의 환호가 아니었다. 힘을 빼고 살았다면 그들의 아픔이 더 일찍 보이지 않았을까? 그들의 기억 속에 내가 고마운 사람이 아니라 아픈 기억을 남긴 존재로 남아 있다면 그것 또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돌아보면 서로에게 아픈 가시나 옹이가 되었던 것 같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 이해와 배려가 없었다는 게, 더 힘과 위로가 되지 못했다는 게 아쉽기만 하다. 운전을 잘한다는 것은 위험한 상황을 요령 있게 잘 피한다는 것이 아니라 미리 방어운전을 해서 그런 위험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처음부터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좋은 일이지만, 차후에라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상처는 덧나고 곪아 인간적 갈등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복잡하게 헝클어진 실타래도 한 가닥 실로 매듭이 풀리듯 그 해결책은 이미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갔다고 흔적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살아갈수록 잊히는 것이 아니라 더 기억의 틈새마다 뚜렷이 살아나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지 못했기에, 열리고 닫히는 소통과 잠기고 풀리는 화해의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는 말처럼 내 마음의 장벽을 허물 때 비로서 과거의 멍에도 벗어나는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랑합니다.”

“그때 미안했어요.”

“정말 고마웠어요.”

가장 쉬운 말이면서도 입이 묶인 염낭처럼 좀처럼 열기가 힘들다. 설사 그런 마음이 어느 순간 들었다가도 내일도 날이요, 모레도 날인데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며 산다. 인생의 오후는 짧기만 한데 아직도 자존심으로, 멋쩍다는 이유로, 정산하지 못한 이해관계를 따지며 망설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추위를 물러가게 하는 것은 두꺼운 외투가 아니라 따뜻한 봄이다. 살면서 미처 사랑에 대해 못다 한 말들, 해보지 못한 부드러운 음성, 사용하지 못한 다양한 형용사들이 아쉽다.

아버지가 별세하신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갑작스럽게 입원하시고, 마지막 한 달간의 연명 기간에도 그저 “힘내세요.” 말밖에 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서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그 한마디가 입안을 뱅뱅 돌기만 했다. 삶의 의지가 꺼지지 않았는데 그 말이 마지막 인사 같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살아생전 그런 말들을 주고받지 못한 것이 죄스럽기 이를 데 없다. 하지 못한 그 말들이 아쉬워 이젠 산소에 갈 때마다 뒤늦게 용서를 구한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것 중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을 때라고 했다. 오늘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고, 오늘 무심코 했던 말이 그 사람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일 수도 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잘 보이려 애쓰고, 작은 수고도 기꺼이 감내해야 할 사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가장 가깝고,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늦은 오후다. 가슴이 벅차오르던 일출의 감격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노을을 맞이하는 감동의 시간이다. 내려놓고 벗어버리고 삶의 영혼을 갈무리하는 시간이다.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못난 놈 잘난 놈, 미운 놈 고운 놈 모두 다 따끈한 난롯가에 옹기종기 손 내밀고 모여드는 시간이다. 내 마음을 열어 떨리는 손 편지를 보내면 그도 당장 그리운 안부를 보내올지도 모르겠다.

<한국문인 2022년 6-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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