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맛, 그리고 글맛 / 김승혜

 

 

어머니의 손이 그랬다. 마디마디 옹이가 진 듯 손가락 관절은 불거져 있었다. 하지만 그 손으로 만든 김치며 장건건이들은 얼마나 맛이 좋았던지... 느린 시간 속에서 찾아내는 깊은 맛, 몸에 좋은 음식, 투박한 손 매무새로 만들어 낸 장건건이들이 가득했던 추억 속의 장독대. 하나같이 그 맛, 정말이지 꿀맛이었다. 하지만 이젠 하늘 아래 어디에도 없다. 어머니 떠나시며 그 맛도 떠나가 버렸다.

내 어린 날의 기억들, 이른 아침이면 언제나 어머닌 장독간에 있었다. 마른행주, 물행주를 쟁반에 담고 잎숟가락까지 얹어서 장독대로 향한다. 자식들 건사하듯 일일이 뚜껑을 열고, 닫고를 하염없이 한다. 손질하고 다듬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다. 어머니만의 무슨 의식처럼 장독대를 관리하고 확인하던 아침의 어머니. 가뭇해진 기억 속에서도 잊히지 않는 맛, 다시 한번 군침을 삼키고 만다.

노년의 어머닌 어느 날, 내가 미용실을 간다니까 따라나섰다. 손톱이 자꾸 부러진다며 손질을 해서 매니큐어를 발랐야 되겠다고 했다. 약간의 손 마사지를 겸한 아주 연한 분홍빛의 매니큐어를 선택했다. 가족들의 옷가지도 손수 만들어서 입힌 어머니가 손을 가다듬으러, 그것도 미용실까지 가야 하나... 싶었지만 이제야 알겠다. 외출 때면 어김없이 망사로 된 장갑을 챙기던 어머닌 옛날 젊었을 때의 손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때마침 고무장갑이 처음으로 나왔지만 어머닌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고무냄새가 거슬린다고 했다. 그 큰 장독의 간장과 된장, 겨울이 시작되면 김장 배추를 태산같이 절여서 치대면서도 맨손으로 다 해내던 내 어머니의 손.

나도 어쩌면 어머니를 닮았다 싶다. 지금까지도 부엌에 고무장갑이 없다. 늙으면 늙은 대로, 주름지고 뼈마디 굵어진 손은 그냥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더 나이가 들면 손을 내밀기가 민망스럽겠지만 여태 고집하고 살았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았다. 어느 날 내 손등의 낯선 풍경, 심하게 늙어버린 내 손의 표정... 하긴 어릴 때부터 내 손이 딴 아이들에 비해서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깡말랐던 내게 추위는 정말 최악이었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손가락, 심지어 발가락에까지 동상이 걸리곤 했으니 예쁜 손 기대하지도 않고 살았다.

그렇게 손이 곱지도 않으면서 결혼 후, 고무장갑을 좀체 잘 사용하지 않는다. 고무장갑은 욕실 청소 때나 한 번씩 사용하는 게 고작이다. 그 역시 엄마를 빼닮았다. 하고많은 세월 흘러 이젠 나도 집안일이나 음식 만들기에도 이력이 붙었지만 고무장갑만이 아니다. 난 절대 음식을 만들던 숟가락으로 음식을 맛보지 않는다.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 내 비위에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여태껏 줄기차게 해 왔던 음식 만들기의 커리어라고나 할까. 그렇게 눈대중으로 간을 맞추어도 크게 실패는 없다. 이제 나도 해 낸다. 우리 엄마처럼...

까마득히 먼 어느 날, 저녁답이었다. 어머니는 그날도 어김없이 호박 툭툭 썰어 넣고 두부를 곁들인 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어느 청년이 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중에 우리 집 앞을 지나면서‘와~ 된장! 된장 냄새, 진짜 예술이다!’하면서 지나간다. 어머니가 한참이나 뒤에 알아듣고는‘누고? 들어와서 밥 먹고 가라 해라’며 문밖으로 나가니 이미 그 청년은 사라지고 없었다. 예술, 언제부턴가 예술이란 단어의 쓰임새가 많아졌다. 무슨 좋은 풍경이나 음식을 만나면‘예술, 예술’이란 표현들을 많이 하곤 한다. 하지만 그 옛날, 된장 냄새를 접하고 예술이라 표현했으니 지금까지도 얼굴은 모르지만 아마도 그 청년은 정말 예술이었지 싶다.

모든 것들이 귀했던 옛 시절, 그렇게 담근 된장이며 간장이 익을 즈음이면 동네 아줌마들이 양푼이를 들고 줄을 선다. 김장 때도 마찬가지다. 받아 들고 가면서도 연신 먹으면서 가던 아줌마들이 생각난다. 우리도 그리 넉넉지 못한 살림이었지만 언제나 어머니는 그릇을 들고 오는 동네 사람들, 내치는 법 없었다. 항상 마주 보고 건네며 내년에는 더 많이, 더 맛있게... 따스한 정情도 함께 보탠다.

그 옛날 어머니의 예술 같은 손맛, 그 맛 닮은 글 한편 있었으면 한다. 난 그렇다. 뭔가 스치는 글감이 떠오르면 하염없이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길고도 길다. 마음속에 한 편의 수필을 스케치해 놓고 제목부터 먼저 정해져야 글이 시작된다. 내 글쓰기의 오래된 습관이다. 제목이 정해지면 저장을 해 놓고도 그 제목에 걸맞은 생각들로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르는지 모른다. 얘기를 전하듯 그냥 초고를 두들겨서 저장을 해 놓고 무시로 마음이 이끌리면 컴퓨터를 열고 저장해 둔 원고를 열어 탈고가 시작된다. 열었다 닫았다를 계속하는 그 탈고의 횟수, 정확히 셈할 수도 없다. 그저 무한정 계속된다고 해야겠다. 그야말로 열고 닫고의 연속.

문학에 입문한 지가 어느새 이십 년을 향해 가고 있다. 나와 글이 만나는 시간은 고요하다. 온갖 제스처로 요란 떨지 않아도 되는 글, 하염없는 글과의 만남, 더하여 나름대로 열고 닫으며 손질하는 시간들이 좋다. 아니, 소중한 나의 시간이기에 더욱 좋다. 어쩌면 가장 나다워지려 하는 순간들이 그지없이 좋기만 하다.

언제였던가. 어김없이 컴퓨터를 켜고 글을 다듬으면서 장독대의 어머니가 스치던 어느 날 아침, 어김없이 두 모녀의 아침 모습은 그렇게 닮아 있었다. 그 옛날, 예술이라 전하던 어머니의 음식들과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옷가지를 받아들고 엷은 감탄사를 토해내던 모습들을 떠 올리며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까지 일었다. 나, 언제쯤이면 예술 닮은 글맛을 만들 수 있을까.

열려 있는 글들을 손질해서 닫는다. 깊은 글맛, 고대하며….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