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을 허물면서 / 목성균
잠실로 쓰던 헛간에 세간을 전부 옮겨 놓고 나자 하루해가 설핏했다. 둘째와 막내는 돌아가고 나는 안방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했다. 아침 일찍 포크레인이 집을 헐러 오기로 되어 있기도 했지만 나는 내일이면 허물어질 이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싶었다.
세간을 비워 낸 빈집은 마치 공연을 끝내고 장소를 옮겨가기 위해서 내부를 비워 낸 서커스단의 빈 천막처럼 썰렁했다. 기우는 늦가을 엷은 저녁 햇살이 아쉬운 듯 마루 끝에 잠시 머물렀다. 마음 둘 곳이 없어 마당에 서성거렸다.
세간이래야 할머니와 어머니가 시집올 때 해 가지고 온 낡은 장롱을 비롯해서 이불과 옷가지 그리고 옹기와 사기들이 전부지만 우리 식구들의 기쁜 웃음과 허망한 한숨이 밴 피붙이 같은 세간들이다. 그 세간을 비워 낸 집은 집이 아니고, 삶이 머물렀던 흔적일 뿐이었다. 끌음에 그을린 납작한 초가집은 마치 다 짜 먹은 노모의 가슴팍처럼 빈약하기 그지없다.
할머니와 아버지가 가계(家系)를 이끌고 가시던 시절의 이 초가삼간 집은 고래등같이 펑퍼짐하고 그득했었다. 하루 일을 끝내고 마루 끝에 걸터앉아서 저무는 앞산을 바라보시던 할머니의 만족스러운 옆얼굴과 방울을 쩔렁거리며 외양간으로 곧장 들던 황소의 고삐를 잡은 꿋꿋한 아버지의 등허리에 내려앉든 어둠, 아궁이의 불빛이 부엌을 밝히고 기명 부딪치는 소리가 바쁘게 들려 오던 저녁때의 이 집은 융성한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
이 집의 안방에서 할머니는 세상을 뜨셨다. 향년 97세였다. 청상에 홀로되어 삭정이 같이 사그라진 농부(農婦)의 생애에 수의를 입히시며 꺽꺽 우시던 아버지의 떨리는 손길이 눈에 선한데, 그 아버지도 이 방에서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셨다.
우리 오 남매도 이 안방에서 비릿한 냄새를 피우면서 태를 갈랐다. 어머니는 부석부석한 얼굴로 삼굿 같은 아랫목에 앉아서 첫국밥을 드셨으리라. 내가 태어났을 때는 열 여덟 새신랑인 아버지가 헐레벌떡 읍내 장터에 가서 미역을 사 오셨다고 한다. 막내가 태어났을 때는 열 여섯 소년인 내가 서리 아침에 이마에 떡시루처럼 김이 오르도록 읍내에 달려가서 미역을 사 왔다. 이 집 안방에서 고고한 소리를 지르며 우리가 태어났고 어른들은 진동하는 곡성을 받으며 세상을 뜨셨다.
그런 이 집을 허무는 것은 아버지의 불편한 여생을 위해서다. 지난해 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 지셨다. 다행이 치료의 경과가 좋아서 당신 손수 대소변은 가릴 수 있으시지만 그 것도 집안에 장애인용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을 경우고, 뜰과 마루가 높고 마당 귀퉁이에 뒷간이 설치된 시골집에서는 누구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혼자 마당까지 나오셔서 땅을 밟아도 보시고, 용변도 혼자 볼 수 있는 동선(動線) 구조의 집을 새로 짖기로 한 것이다. 지체 장애인이 되신 아버지의 생활 편리를 위한 것이 명분이지만 자식인 우리가 부모 모시기에서 좀 자유로워 보려는 욕심 때문인 게 사실이다.
군불을 지피고, 안방에 들어 와서 혼자 우두커니 앉았다. 밤이 깊어 간다. 젊은 날 나는 이 안방에서 밤을 지새우며 물레를 돌리시는 할머니 옆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책을 읽었다. 네프로도프의 양심에 동감하여 끝없는 눈벌판을 방황하기도 하고, 유고슬라비아의 참담한 민족적 편견에 분개하며 드리나 강의 다리에 서 있기도 하고, 헤세의‘청춘은 아름다워라’를 읽으며 사랑할 소녀가 없는 내 가난한 젊음을 서러워도 하고, 황량한 폭풍의 언덕에서 캐더린을 기다리는 히드크리프의 애증(愛憎)을 동정도 했다. 그렇게 젊은 날, 나의 세계였던 오두막집의 마지막 밤은 속절없이 깊어 갔다. 방안에 붕붕거리는 물레소리가 가득했다. 할머니의 섭섭한 얼굴이 보였다.
이 집은 비록 초라한 초가삼간 오두막집이었지만 사대봉사(四代奉祀)를 하는 종가(宗家)집이었다. 내 유년시절에는 증조부 제사에 참례하러 동짓달 찬바람에 백발이 성성한 종증조부께서 노루목 강벼루 길을 지나, 살미 지름길을 지나, 쇠재를 넘어, 그 먼 칠 십리 길을 걸어서 찾아오시던 집이다. 삽짝 안에 들어서서 지팡이에 노구를 지탱하시고 가뿐 숨을 고르시던 하얀 노인네를 식구들이 달려나가서 집안으로 모셔들였다. 유독 나에게 기대에 찬 눈길을 주시던 노인의 의중은 내가 종손이기 때문이었을 터인데 종갓집을 허무는 내게 저승에 게시는 그 어른이 변함없는 눈길을 주실 지 우려 된다.
일문의 종가가 내일 아침이면 포크레인의 삽날에 의해서 허물어질 것이다. 경위야 여하튼간에 종손인 내가 종가 집을 헐게 되어 조상님께 면목이 없지만 그래도 새집을 지어 드리는 것이니 죄스러운 일은 아닌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문의 보존해야 할 소중한 내력까지 다 허물어 버리는 것 같아서 일말의 가책을 안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아침이 되었다. 포크레인이 도착했다. 포크레인은 가소롭다는 듯이 상기둥을 삽날로 밀어 부쳤다. 집은 ‘우지직’하는 힘없는 비명을 남기고 폭삭 허물어지고 말았다. 허무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얼기설기 틀어 놓은 까치둥지도 태풍 앞에 온전히 버티어 내거늘, 우리 가문을 면면이 이어온 삶의 응력(應力)이 그 뿐인가. 포크레인 삽날 앞에 숨결 같은 뽀얀 먼지를 풍기며 거짓말처럼 허물어졌다.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도 포크레인이 끙끙거리고 힘을 드린 연후에야 문명의 이기 앞에는 역부족이라는, 설득력 있는 모습으로 무너질 줄 알았다. 그렇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무너질 줄은 몰랐다. 허무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집은 삶이 담겨 있을 때에 탄탄히 버티어 내는 힘을 지니는 것일까? 나는 집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임종하듯 서럽게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