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 류창희

 

화폭 가득 초록으로 청보리가 일렁인다. 바람결에 그리움을 찾는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발을 멈춘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휘파람 소리만 들린다는 노래를 불렀다. 노랫말은 흔히 '님타령'인데, 신명나는 놀이판에서 한 곡조 뽑으면 분위기 깨기에 십상이다.

가끔 근사한 로비에서 보리 이삭의 꽃꽂이를 본다. 하얀 백합이나 보랏빛 아이리스를 에워싸고 들러리 역할을 하고 있다. "나락을 꺾다니 천발을 받지" 말은 어른 흉내를 내본다. 나락을 꽃으로 여기는 정서는 보릿고개를 겪지 않은 세대일 것이다. 나만 해도 배고픈 기억보다는 보리밭 고랑에서 나물 캐던 동무들이 보인다.

보리와 여름은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한다. 허기진 여름날, 꽁부리밥에 열무김치와 쓱쓱 비벼 먹으면 일품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그 맛을 모른다. 입안에서 미끈거리며 겉도는 보리 밥알이 살아있는 생물 같아 툭툭 깨물지 못하니, 보리밥의 운치를 모른다.

보리차는 좋아한다. 혹독한 추위를 참고 이겨낸 보리알갱이로 끓인 보리차가 여름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발끝까지 시리게 한다. 일하느라 흘린 땀을 씻어 내리는 일등공신이다. 그러나 보리는 애석하게도 일등 곡식이 아닌 까닭에 수난 또한 고달프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벼 이삭의 겸손과 비교하여, 익어도 고개를 꼿꼿이 세운다며 교만으로 천대받기 일쑤다.

격식 없이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하는 행동을 빗대어 보리 바둑, 보리윷, 보리 장기를 둔다고 하고, 신이나 둠짓둠짓 뻣뻣하게 춤사위를 벌이면 보릿대 춤이라 하며, 흠씬 매를 두들겨 맞는 억울함도 보리타작이라고 한다. 좋지 않다는 말을 할 때 '보리 떡을 떡이라 하랴'라며 낮춰본다. 맛보다는 굶주린 배를 채우는 수단으로 여긴다. 백설기, 매화 송편, 삼색 경단, 절편처럼 맛깔스러운 이름을 얻지 못하고 염원까지 짓눌러 '평생소원이 보리 개떡'이라 한다.

숭고한 생리 현상까지 '보리방귀'로 놀림당한다. 타박이 민망하여 슬쩍 뒤로 숨어들어 숨죽이면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라고 더 주눅 들게 하더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손을 덥석 잡으며, 반갑다는 말 대신 '보리 문둥[文童]' (욕같이 들리지만, 산이 많은 경상도 지역에서 쌀밥이 귀해 보리밥을 먹고 서당에 글공부하러 다니는 아이를 말함)는 또 무언가.

조금만 서두르면 '보리밥에서 숭늉 찾는다'라고 나무라고, 오죽하면 남자들이 '겉보리 서 말만 있으면 처가살이하랴.'라는 말까지 할까. 그 와중에도 사위들이 자존심 지키려고 예를 차리면 '보리누름까지 세배한다.'라고 비웃음거리가 되니 보리의 수난은 끝이 없다.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보리 안 패는 3월이 없고, 나락 안 패는 6월이 없다'는데 긴 세월 속에서 우리 민족의 가난했던 시절을 '보릿고개[麥嶺]'라는 험준한 산맥을 넘었다. 보리의 공적은 "~아 대한민국" "~아 나의 조국"노랫말처럼 밟을수록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자랄수록 대찬 보리 근성이 되었다.

시제時祭를 지내는 산소 앞에 팥알 크기의 흰점 붉은 열매가 반갑다. "어머, 보리수!"라고 외쳤다. 곁에 있던 손아래 동서가 밭에 있는 보리쌀의 보리가 보리수인 줄 알았다며 신기해한다. 인도의 '보리자나무' 밑에서 득도를 한 부처님을 생각하며 불교도들은 삶의 지혜로 보리심菩提心을 싹 틔운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보리 혼식으로 선진조국이 되었다. 이젠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포상을 받을 만도 한데, 보리는 예나 지금이나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윽하게 부르던 보리밭의 가곡을 잊고 살던 요즈음, 생활 깊숙한 곳으로부터 보리밭에 들어서고 있다. 어려웠던 보릿고개를 넘으니, 넌지시 다가오는 수보리須菩提의 교훈이런가.

어느 소설가는 은밀한 공간으로 밀밭이나 물레방앗간을 즐겨 쓰다 애압愛狎의 조절판 구실을 하는 러브호텔을 '보리밭'으로 명명했다. 전국에 물 좋고 산 좋은 곳에, 휘황찬란한 빛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그림 좋은 집들이다. '보리 밥알로 잉어를 낚는다'라는 신종 보리밭이다. 노을도 없는 저녁에 뜬금없이 웬 휘파람 소리인가. 왜 하필 보리밭인가? 쌀을 주식으로 하는 민족은 논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논은 어째서 그리움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순위에서 밀려난 대체 곡식인 보리밭만 그리워할까.

보리밭 이랑은 무엇이든 잘 자라게 하는 너그러움이 있다. 냉이 씀바귀 꽃따지에 고랑을 내준다. 허리가 휘어지도록 날이 저물도록 일하던 어머니들의 삶이 보리밭에 있다. 그 시절의 어머니들처럼, 아침마다 일어나 마음 밭의 잡초를 뽑아낸다면 번쩍이는 네온사인 빛이 사라질까.

보리밭에 가느다란 꽃대에 맥없이 피어나던 꽃은 어디 있을까? 그 소녀는 지금도 보리밭 고랑에서 엉성한 냉이꽃처럼 끈질기게 뿌리내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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